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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270. 유럽의 지붕, 다흐 3국

유럽의 나라를 이야기할 때 "OOO 3국"이라는 표현을 종종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게 베네룩스(Benelux) 3국이죠.

모두 아시겠지만 벨기에(Belgium)-네덜란드(Netherlands)-룩셈부르크(Luxemburg)입니다. 역사적인 연결고리는 없고, 심지어 벨기에는 네덜란드의 점령지이기도 했습니다만, 이들이 뭉친 이유는 독일, 영국, 프랑스 등 덩치 큰 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소국(국력이 약하다는 게 아니라 국토가 작고 시장규모가 적다는 뜻입니다)이어서 서로 뭉쳐야 대국과 맞설 힘이 생기기 때문이죠. 관세 동맹에서 시작된 것인만큼 경제적인 목적이 강합니다.


그런데 베네룩스 3국이라는 표현은 한국식이고, "베네룩스"라고 부르는 게 정식 명칭입니다. 하긴, 그 명칭 자체가 3국의 이름을 합친 것이기는 하지만요.


그 다음으로 많이 들어보았을 명칭은 발트(Balt) 3국이겠죠.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3국입니다. 영어식 표현으로는 발트 국가(Baltic States)라고 적습니다. 역시 발트 3국이라고 부르는 건 한국식 표현입니다.


발트 3국 역시 뭉친 이유는 비슷합니다. 소련이라는 강대국에 반강제로 점령당했다가 함께 힘을 모아 독립했고, 이후에도 러시아라는 거대 국가에 먹히지 않기 위해 서로 힘을 합한 거죠. 서로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건만 정치적인 목적으로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다만, 먹고 사는 목적으로 한 몸이 된 게 아니다보니 경제 격차도 심한 편이고, 가장 부유한 에스토니아의 일반 국민들은 굳이 발트 3국으로 묶이는 것에 동질감을 느끼지는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캅카스 3국(코카서스 3국)이라는 표현도 익숙할 텐데, 여기는 유럽으로 보기에 애매한 구석이 있어 일단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 또 하나의 "삼국지"를 더합니다. 이름하여 다흐(Dach) 3국입니다.


아마 이 명칭을 들어본 분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이버에 검색해도 안 나옵니다. 제가 만든 명칭이거든요.


욕하지 말고 잠깐만 더 들어보세요. "다흐 3국"이라는 표현은 제가 만든 명칭이기는 하지만 다흐(Dach)는 이미 서구에서는 흔하게 통용되는 그룹명입니다. 그냥 저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거기에 "OOO 3국"이라고 추임새만 넣었습니다.

영어로는 다흐 지역(Dach Region) 또는 다흐 국가(Dach States)라고 많이 적습니다. 바로 독일(Deutschland)-오스트리아(Austria)-스위스(Confoederatio Helvetica)를 지칭합니다.

* 잠깐! 왜 스위스가 Swiss, Switzerland, Schweiz가 아닐까요? 스위스의 정식 국호는 헬베티아 연방(라틴어로 Confoederatio Helvetica)이며, 국가 도메인도 .ch를 사용합니다. 스위스라는 이름은 처음 연방을 구성할 때 주도했던 슈비츠(Schwyz) 지역에서 유래하였으며, 다른 나라에서 스위스를 칭할 때 이 이름을 사용합니다.


즉, 다흐 3국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리히텐슈타인까지 들어가야 하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스위스와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소국이라서 무시(?)하고 다흐(Dach)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세 나라가 원래 한 나라 아니었었나, 그렇게 막연히 생각하는 분도 계실 줄 압니다. 아닙니다.

스위스는 13세기경 아주 일찌감치 독립하여 쭉 독립적인 국가로 성장하였습니다. 영세중립국의 지위를 인정받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죠. 특히 알프스 산악지대에 있다보니 문화가 완전히 다릅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큰 틀에서 한 나라였던 건 맞지만, 신성로마제국은 사실상 껍데기뿐인 제국이고 각 지방국가가 실질적인 권한을 가졌던 것을 감안하면 역사상 같은 나라였던 적이 없다고 해도 됩니다(나치에 의해 강제로 합병된 순간은 비정상적인 상황이었으니 예외로 합니다).

독일어 사용지역이니 역사적으로 독일이 중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또한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독일은 대주교가 다스리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신성로마제국의 변방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실질적인 파워를 가진 곳은 오스트리아였습니다. 그 유명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나라였고,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배출하며 막강한 힘을 떨쳤고, 체코 헝가리 등 오늘날 동유럽에 해당되는 많은 나라를 지배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같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나라이면서도 문화가 많이 다릅니다. 오스트리아는 종교적으로는 훨씬 보수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역사적으로 다른 민족을 지배하며 그들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문화를 융합하여 굉장히 진취적인 눈부신 문화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면, 분명히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언어는 같은데 거리의 분위기부터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도 그렇습니다.


참고로, 다흐(Dach)는 독일어로 "지붕"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마침, 스위스 대부분과 오스트리아 상당부분, 그리고 독일 남부는 알프스 지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유럽의 중앙에 있으면서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으니 "지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죠.


가히 "유럽의 지붕"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습니다. 유럽의 지붕 다흐 3국은 제가 특별히 많은 애정을 쏟는 나라들인만큼,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