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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278. 베드버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요즘 방영중인 한 프로그램에서 베드버그(Bedbug) 이야기가 나온 모양입니다. 직역하면 "침대 벌레", 그러니까 침대에 사는 벌레쯤 되겠는데, 편의상 빈대라고 해도 됩니다. 이번 포스팅은 유럽에서 잠을 잘 때 빈대가 걱정되는 분을 위한 팁입니다.


자, 먼저 이 질문을 해야겠어요. 진짜 유럽에 빈대가 많아요? 한국보다 잘 살고 위생규제도 심할텐데 빈대가 있어요? 그것도 매일 청소하는 정식 숙박업소에서 그게 말이 돼요?


유감스럽게도 말이 됩니다. 실제 유럽은 숙박업소에서 베드버그로 인해 고생한 여행자의 경험담이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비싼 고급 호텔에도 빈대가 나올까요? 그런 사례는 없다고 봐도 됩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곳은 저렴한 호스텔입니다.

도미토리(dormitory)라 불리는 호스텔의 공동침실은 이런 식으로 생겼습니다. 2층침대 몇 개 있는 기숙사 같은 공간입니다. 여기서 방 하나를 빌리는 게 아니라 침대 한 자리를 빌려 숙박하는 셈이죠. 기본적으로 남녀 구분도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 여행자가 이런 공간에서 함께 잠을 잡니다. 당연히 불편하지만 호텔 가격의 1/5~1/10 정도 되니 주로 젊은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하죠.


그런데 서양은 기본적으로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문화권입니다. 밖에서 벌레가 묻으면 그대로 실내까지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이건 고급 호텔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왜 호스텔은 빈대에 노출될 확률이 높은고 하니,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비용 절감을 위해 이틀 이상 숙박하는 사람의 침대시트를 매일 교체하지 않습니다. 만약 3일 동안 묵는다칩시다. 체크인할 때 깨끗한 침대시트를 가지고 와서 깔지만 3일 동안 세탁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셈이 됩니다. 밖에서 벌레가 묻어오면 침대 프레임에 숨어들게 되겠죠.


둘째, 젊은 서양인들은 잘 안 씻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될 수 있어 저도 몹시 조심스럽고 불편하지만, 나쁜 의도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로 젊은 서양인들 목욕 잘 안 합니다. 여름에 땀 뻘뻘 흘리고 와서 그냥 자요. 공동 침실인만큼 옷을 갈아입기 편하지 않고 밤에 불을 끄고 조용히 해야 하는 등의 이유도 안 씻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호텔이라면 침대시트도 교체해줄 테고, 호텔에 묵을 정도의 여행자라면 샤워는 잘 하겠죠. 그래서 호텔은 베드버그 염려할 걱정은 없고, 호스텔은 마냥 무시하기는 어렵습니다.

혹시 호스텔이 청소도 안 하고 세탁도 대충 하지는 않을까요? 절대 그렇지는 않습니다. 요즘 세상에 그랬다가는 장사 망하죠. 침대시트 등의 세탁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전문 세탁업체가 수거해서 깨끗이 빨아 다시 가지고 옵니다. 다만, 혹 베드버그가 밖에서 묻어왔는데 그 놈이 침대 프레임 속에 숨어버렸다, 그러면 아무리 청소나 세탁을 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 불의의 피해자가 발생합니다.

* 최근 베드버그가 언급된 방송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알베르게 숙소였던 것 같은데요. 이런 숙소는 직접 세탁하고 관리하니 청결하지 않은 곳은 베드버그로 고생할 수 있습니다. 이게 예외적인 경우이고, 도시의 호스텔은 인건비와 수도,관리비 때문에라도 직접 세탁하는 곳은 드뭅니다.


따라서 후기를 살펴보는 게 큰 의미는 없습니다. "여기서 베드버그 나왔어요"라는 말이 있다고 해서 그 업소가 더럽다는 의미가 아니고, 단지 그 침대를 먼저 썼던 어떤 여행자가 더럽다는 의미인 거니까요.


그러면 후기를 보고 문제 있는 업소를 걸러낼 수도 없고, 대체 어떻게 해야 베드버그로부터 안전할까요?


되게 싱거운 결론이겠습니다만, 살충제를 가지고 다니는 게 안전합니다. 시중에 판매하는 인체에 무해한 빈대 살충제가 여럿 있습니다. 가지고 다니며 침대 시트 깔기 전에 프레임 사이사이에 한 번 뿌려주세요. 간혹 시트를 먼저 깔아두는 곳도 있는데, 그러면 살짝 들춰서 프레임 사이사이에 뿌려주세요. 맨살을 드러내지 않으면 더 안전합니다. 그래서 조금 더 조심하기 위해 침낭을 가지고 다니며 침대 위에 침낭 놓고 자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 단, 호스텔의 입장에서는 그 침낭이 깨끗하다는 보장이 없죠. 오히려 침낭이 더 더럽다고(아무데서나 자니까) 인식하기도 합니다. 이런 호스텔에서는 침낭 사용을 금지한다는 것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론상으로는 금속 프레임에서는 베드버그가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나무 프레임 침대보다는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베드버그에 물리면 대개 2~3일 잠복기를 거쳐 가렵기 시작하고, 긁다보면 환부가 부어오르고 더 가려워집니다. 정상적인 여행이 어려울 지경이 됩니다.


베드버그는 모기와 달리 한 번 물고 끝이 아니라 몸을 돌아다니며 계속 물기 때문에 환부가 일렬로 이어지거나 한 부위에 집중됩니다. 이런 자국이 보이면 이건 99.9% 베드버그에 당한 것이니 바로 약국에 가서 항히스타민이나 스테로이드 계열의 연고를 사서 발라야 합니다. 비처방 의약품으로 구매 가능합니다.


긁지만 않으면 다시 가라앉고 흉터도 거의 남지 않습니다. 하지만 긁기 시작하면 더 심해지고 나중에 흉터까지 남을 수 있으니 절대로 긁지 않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한 베드버그에 당했다면 그 벌레가 내 옷이나 가방에 붙어있을 확률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베드버그에 당한 게 확인되면 즉시 화장실에서 모든 짐을 다 꺼내서 탈탈 털어주세요. 가방과 신발까지요. 뜨거운(미지근한X) 물로 온 몸을 구석구석 꼼꼼히 씻으세요. 여건이 허락하면 세탁 가능한 모든 것은 즉시 세탁하세요. 가장 좋은 건 일광 소독인데, 여행 중 일광 소독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테니까요.


침대에서 직접 벌레를 발견한 경우에는 즉시 증거를 남기고(사진촬영 등) 벌레를 잡은 뒤 프론트에 가서 신고하고 다른 방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벌레는 발견하지 못하고 내가 물린 사실만 알았다, 그러면 이게 어디서 물린 건지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에(잠복기가 있으므로) 숙소에 신고해도 적극적인 대처를 받기는 어렵습니다. 당신이 전에 묵었던 숙소에서 물린 것 아니냐고 하면 딱히 반박할 근거는 없거든요.

지극히 현실적인 도미토리 사진입니다. 당연히 하루 자고 나면 이렇게 되죠. 그런데 손님이 퇴실하지 않으면 방에 쓰레기는 치워주지면 침대시트는 이 상태로 더 가는 겁니다. 밖에서 벌레가 묻어왔는데 잘 씻지도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될지 여러분이 상상하실 수 있겠습니다.


이 글을 종합하면, 결론적으로 베드버그로부터 안전한 호스텔은 없고, 내가 살충제 가지고 다니며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됩니다. 호스텔은 잘 곳이 못 되는구나 싶으실지도 모르겠지만, 확률로 따지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조심할 것은 조심하시라는 의미에서 구구절절 살벌한 말을 길게 적습니다. 어쨌든 하루에 몇십유로 숙박비를 절약하니까 전체 여행으로 따지면 몇백유로 절약하는 셈이죠. 비용을 아낀만큼 더 잘 먹고 다니거나 더 많은 것을 관람할 수 있으니 여행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이 됩니다.


결국 여행 패턴이나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른 셈이니, 요모조모 따져보고 즐겁게 여행하시기 바랍니다.


추신. 왜 "빈대"라는 말 놔두고 "베드버그"라고 적느냐 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일단 엄밀히 말해서 완전히 일치하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여행 중 만날 돌발상황이니까 현지에서 통용되는 표현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