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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280. 슈투트가르트가 이야기하는 미세먼지 해법

거의 1년 전 네이버포스트에 슈투트가르트와 관련한 글을 올린 적 있습니다. 주제는 대기오염, 즉 미세먼지였습니다. 슈투트가르트도 한때 엄청난 대기오염에 시달렸으나 이를 극복하고 청명한 하늘을 되찾은 도시거든요. 물론 그들과 우리의 사정이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무얼 노력해야 하는지 하나의 힌트는 되겠다 싶어 비전문가의 눈으로 본 것을 정리했던바 있습니다.

당시 제가 이야기한 요지는 이것입니다. 오염물질의 배출을 줄이고 중국과의 외교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물론 좋은데 더 중요한 것은 오염물질이 빨리 배출되도록 "바람 길"을 여는 것이다, 그 노하우를 슈투트가르트에게 배울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는 게 바빠 요즘 대세라는 유튜브/팟캐스트 방송도 보지 않고 삽니다만 가끔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이번에 미세먼지를 이야기하더군요. 제시된 팩트를 보고 놀랐습니다. 2017년부터 미세,초미세먼지량은 줄었으나 우리는 반대로 체감하며 살고 있다, 그 이유가 물론 언론이 연일 공포감을 조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기 정체가 심해져서 그렇다, 라고 이야기하더군요.


1년 365일 중 대기가 정체된 날이 200일 이상, 아무리 최근 기상이변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환경이 바뀐 것 아닌가요?

슈타트가르트 시내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산까지 "녹색 띠"가 이어져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과학적 지식은 없지만, 찬 공기가 더운 공기를 밀어낸다는 상식은 알고 있습니다. 숲에서 생성된 산소(=찬 공기)가 도심의 오염물질(=뜨거운 공기)를 밀어내도록 바람 길을 열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는 다임러 그룹과 포르쉐, 보쉬의 공장이 있는 산업도시입니다. 기본적으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이 많을 수밖에 없죠. 그러나 온 도시에 녹색 띠를 이어 찬 공기가 막히지 않고 순환하며 뜨거운 공기를 밀어내게 바람 길을 연 것입니다. 덕분에 아주 쾌청하죠.


한국은 어떻습니까. 서울부터 지방까지 너나 할 것 없이 고층빌딩이 병풍처럼 바람 길을 다 막고 있습니다. 산이 많고 강이 많아 찬 공기가 만들어질 조건은 다 갖추었지만, 정작 산 앞과 강변은 "프리미엄 조망권"이라는 해괴한 말을 붙여서 고층빌딩으로 도배해버려 찬 공기를 차단합니다. 에어커튼도 아니고, 이러니 대기가 정체될 수밖에 없죠.

건물 옥상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고층빌딩을 짓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물론이고, 바람 길을 막는 건물이 있다면 모두 옥상이나 테라스에 숲을 만들어 "녹색 띠"를 연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더 높은 빌딩을 지으면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인프라가 생기겠죠. 슈투트가르트는 그걸 희생하고서 일부러 불편한 길을 택했습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투기의 경제학이 세상을 지배해 돈이 우선인 세상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환경도 보호하고 쾌적한 생활환경까지 만들겠다 하면 사실 말이 안 되는 욕심 아닌가요?


미세먼지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만 욕하는 건 아주 쉽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서울 지방 할 것 없이 온 도시마다 고층빌딩으로 도배를 해버리고 바람 길을 다 막아버린 상태에서는, 설령 중국이 오늘 당장 모든 공장과 발전소를 부수고 미세먼지 배출을 0으로 만든다고 해도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 탓하고 남 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먼저 성실히 이행하는 게 먼저입니다. 경유차 규제, 노후 발전소 규제, 이런 건 당연히 해야죠.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 오염물질이 빨리 배출될 수 있게 바람 길을 여는 것, 그게 병행되지 않으면 전 무슨 대책도 효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슈투트가르트가 대기오염으로 크게 고생했던 이유는, 여기가 분지지형이어서 대기가 정체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의 미세먼지가 2년 동안 개선되었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점점 더 심해지는 이유가 결국 대기 정체 때문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슈투트가르트에게 배울 지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앞서 언급한 그 유튜브 방송에서 이야기하기를, 80년대의 대기오염은 지금과 비교도 안 될만큼 심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저는 어린 시절 뿌연 하늘만 보고 살았을 텐데 "하늘이 하늘색"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오래 전 기억이기는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오염의 정도는 그 때가 지금보다 덜했던 것 같아요. 폐로 들어오는 오염물질의 정도는 심했을지언정.


결국 오염물질이 얼마나 발생하느냐(또는 외부에서 유입되느냐)만 따질 게 아니라, 오염물질이 얼마나 오래 정체되어 있느냐로 해법의 아젠다를 이동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투기의 경제학을 버려야 합니다. 땅과 건물을 돈으로 여기는 습성을 버려야 합니다. 둘째,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땅주인은 재산권 행사가 제한되는 걸 감수하고, 일반 시민은 사회 인프라가 좀 부실해지는 걸 감수해야 합니다. 경유차 도심 운행 제한 등 내 실생활과 직결되는 불편도 감수해야 됩니다.


슈투트가르트는 그렇게 했습니다. 최근 들어 디젤차 이슈가 등장하자 경유차의 도심 운행 제한을 가장 먼저 도입했습니다. 심지어 자동차 회사 덕분에 먹고 사는 도시에서 말입니다. 시민들이 기꺼이 불편에 동참하겠다는 의식이 있으니 가능한 거죠.


한국은 가능할까요? 정부가 뭘 하기에 앞서 저와 여러분 같은 평범한 시민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데, 가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