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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305. 루르 지대 산업유산

루르(Ruhr)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만약 이 이름이 익숙하다면 당신은 산업이나 공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 것 같습니다. 루르는 독일의 강 이름입니다. 라인강(Rhein)은 다들 들어보셨을 텐데요. 라인강의 지류가 루르강이고, 바로 이 루르강이 흐르는 곳에 위치한 도시들이 독일의 대표적인 산업 및 공업 도시이며, 편의상 "루르 공업지대"라고 부릅니다.

* 외래어 표기법대로라면 "루어"가 옳습니다. 그런데 "루르"라는 표기가 너무 관용어처럼 굳어져버렸습니다.


지금이야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예전 같지 않지만, 서독의 경제가 무섭게 부흥하던 1960~70년대 루르 공업지대는 서독의 엔진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공장, 발전소, 광산 등이 들어섰어요. 규모도 컸습니다. 공장에서 만든 물건을, 광산에서 얻은 광물을, 선박을 이용해 편하게 수송할 수 있는 입지조건이었죠. 특히 라인강은 북해로 흘러나가기 때문에 해외로 바로 수출하거나 재료를 수입하기에도 좋은 위치였습니다.


그러나 과거처럼 큰 규모의 제조업이 융성하기 힘든 지금,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당연히 폐공장은 흉물스럽겠죠. 철거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루르 공업지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게 파괴된 독일을 다시 일으켜 부유한 선진국의 길로 이끈 엔진입니다. 흔적을 없애는 것은 역사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루르 공업지대에 속한 각 도시들은 문 닫은 공장, 광산, 발전소 등을 문화단지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새 생명을 부여받은 산업유산은 도시의 새로운 먹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도시재생의 바람직한 예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요. 과연 루르 지대의 산업유산은 어떤 곳들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일단 베스트 3을 먼저 소개할게요.

가장 첫 손에 꼽히는 곳은 에센(Essen)의 촐퍼라인 광산(Zeche Zollverein)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구요. 원래는 탄광이었고, 1970년대 한국에서 잔뜩 보낸 파독 광부가 대부분 이곳에서 일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중요한 역사적 현장인 셈이죠. 탄광은 문을 닫았지만 공장에 다이빙대를 포함한 수영장을 만들고 보일러실을 박물관으로 만드는 등 완전히 새로운 문화단지로 재탄생했습니다.

두이스부르크(Duisburg)의 란트샤프트 공원(Landschaftspark Duisburg-Nord)입니다. 원래 용도는 제철소였어요. 문 닫고 난 뒤 정말 황폐화되고 오염도 말도 못했답니다. 두이스부르크는 문 닫은 공장 시설은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 환경을 되살렸습니다. 온갖 식물이 자라나 거대한 식물원처럼 되었습니다. 란트샤프트 공원은 생태 공원이라는 의미입니다. 제철소가 엄청나게 커서 공원 부지도 걸어서 다니기 힘들 정도로 넓은데, 여기서 하이킹이나 자전거 등 레저를 즐기고 밤에는 폐공장에 불을 밝혀 조명 쇼까지 펼칩니다.

함(Hamm)에 있는 막시밀리안 공원(Maximilianpark), 현지인이 줄여 부르는 애칭으로 막시파크(Maxi-Park)는 겉에서 보기에는 아이들 놀이터 같습니다. 넓은 정원에 놀이시설이 많고, 코끼리를 형상화한 건물 등 재미있는 볼거리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곳은 원래 탄광이었습니다. 탄광 건물에 장식과 조명을 덧대어 코끼리를 만든 센스가 굉장합니다.


루르 공업지대의 산업유산 재활용 사례 베스트 3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이런 테마 마음에 드세요?


굉장히 독특합니다. 예쁘다고 탄성을 자아내는 건 아닌데, 굉장히 신기해서 자꾸 쳐다보게 만드는 그런 장소들입니다. 그 역사적 의미까지 되새겨보면 더욱 뜻깊겠죠. 그런 게 아니더라도 넓고 깨끗한 공원에서 산책하고 사진 찍고 놀기 좋은 장소입니다.


이런 테마가 마음에 드신다면, 이어서 다른 스폿도 감상하시겠습니다.

오버하우젠(Oberhausen)의 가소메터(Gasometer)는 가스 탱크입니다. 옛날에 가스를 저장했던 탱크입니다. 지금은 가스 탱크를 개조하여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겔젠키르헨(Gelsenkirchen)의 노르트슈테른 공원(Nordsternpark) 또한 옛 광산입니다. 운하가 가로지르는 곳이어서 지금 보면 처음부터 공원이었던 듯 굉장히 분위기가 좋아요. 광산의 굴뚝은 전망대가 되었습니다.

옛 탄광의 내부를 좀 더 직접적으로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도르트문트(Dortmund)의 촐레른 광산 박물관(LWL-Industriemuseum Zeche Zollern)을 추천합니다. 광산이 실제 가동되었던 시대로 시간여행을 보내드립니다.

하팅엔(Hattingen)의 헨릭스휘테(Henrichshütte)는 옛 제철소입니다. 여기에 있는 용광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것이라고 합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용광로 위에서 주변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내부에서는 제철 과정에 대한 가이드투어가 제공됩니다.


이러한 현대 산업유산 투어는 산업이 매우 발전했으며 그 규모가 남달랐어야 하고, 수명이 다한 것을 함부로 뜯어고치지 않는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지구상에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나라로 독일만한 곳이 있을까요? 색다른 여행테마로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루르 공업지대는 독일 서부에 있습니다. 여기에 속하는 도르트문트는 축구 때문에 들어본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인근의 유명한 큰 도시로는 뒤셀도르프가 있습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