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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304. 헝가리의 성녀 기젤라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헝가리의 성녀 기젤라(Gisela)입니다. 1천년 전의 인물입니다. 독일여행 블로그에서 1천년 전의 헝가리 성녀를 소환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선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우리는 헝가리의 국왕을 먼저 이야기해야 합니다.

헝가리 초대 국왕 성 이슈트반 1세. 그는 헝가리의 초대 국왕, 즉 건국의 아버지이자 로마가톨릭 성인으로 추대된 인물입니다. 헝가리는 머저르(마자르)족의 국가이며, 머저르족은 중앙아시아에서 넘어온 유목민족입니다.


마치 훈족이 그러했듯 머저르족도 파죽지세로 유럽을 쳐들어와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죠. 그 시기에 유럽은 프랑크 왕국이 분열되고 동프랑크가 독일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동쪽의 이민족을 정벌하던 시기입니다.


아시아에서 유럽을 향해 서쪽으로 쳐들어온 머저르족, 서유럽에서 동쪽으로 쳐들어온 독일. 당연히 둘이 만났겠죠. 이 싸움에서 독일이 이깁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작센족이 이겼습니다. 머저르족의 유럽 침공은 거기서 제지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유럽 중앙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유럽의 변방에서 그들의 왕국을 건설하였으니 이게 헝가리입니다. 그리고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건국을 이끈 지도자가 성 이슈트반 1세인 겁니다.


하지만 유럽의 시선에서 보면 헝가리는 엄연히 이민족입니다.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르는 위험요소죠. 헝가리는 이제 막 국가를 세우고 안정을 찾았는데 거대한 유럽을 원수로 두고 있으면 불안하겠죠. 여기서 둘의 이해관계가 맞았습니다.


성 이슈트반 1세는 기독교로 개종하고 스스로 기독교의 전파자를 자처합니다. 헝가리가 점령한 이민족의 지역에서 기독교를 전파한다고 하니 교황도 헝가리를 정식 국가로 인정하게 되었고, 헝가리는 이제 유럽의 동반자로 안정을 얻고, 유럽 역시 헝가리가 침공할 염려를 덜고 오히려 헝가리가 이민족을 다스린다고 하니 안정을 얻게 됩니다.


성 이슈트반 1세는 국왕이 되기 전부터 이 작업을 준비했습니다. 전쟁을 치렀던 작센과는 좀 껄끄러웠는지 독일 왕국의 다른 부족이자 헝가리와 국경이 맞닿게 되는 바이에른의 대공과 사돈관계를 맺습니다. 바이에른 대공 하인리히 2세의 딸이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기젤라입니다.


그녀는 성 이슈트반 1세에게 기독교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여기서부터 헝가리가 기독교 국가가 되고 교황으로부터 인정받고 유럽의 질서를 재편하는 기틀이 생긴 셈입니다.

당시 성 이슈트반 1세의 수도는 에스테르곰(Esztergom)이었습니다. 오늘날 빈(비엔나)에서 멀지 않습니다. 당시 빈까지가 독일 왕국(바이에른)의 영역이었음을 감안하면, 정말 서로 이웃한 나라끼리 사돈을 맺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충족한 셈입니다.


성 이슈트반 1세가 죽고 난 뒤 헝가리 내에서는 기젤라가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대요.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사냥 중 사망하여 후사가 없었으니 더더욱 새 국왕은 기젤라를 못마땅하게 여겼겠지요.


결국 기젤라는 쫓겨나다시피 바이에른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파사우(Passau)의 한 수녀원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바로 그 수녀원이 오늘날 니더른부르크 수도원입니다. 내부에 기젤라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년 두 차례씩 헝가리의 순례자가 여기까지 찾아온다고 합니다.


아주 오래 전 1천년 전의 혼인 관계가 당시 유럽의 질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혼인의 주인공 기젤라는 독일과 헝가리 역사 모두에 중요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은 저도 이렇게까지 알았던 건 아닌데 <부다페스트 홀리데이>를 쓰면서 헝가리 역사를 알게 되니 자연스럽게 연결되네요. 유럽의 역사가 이렇게 서로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더 어렵지만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