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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독일뉴스

News | 베를린 신공항 개장 연기의 원인

베를린 신공항의 끝없는 개장 연기에 대해서는 여행정보로 몇 차례 소개한바 있는데, 이번에는 여행정보가 아닌 사회적 이슈 관점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기술강국 독일 답지 않은 이 끝모를 망신살의 원인이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후진적인 시스템 때문이었다. 최근 한 언론이 베를린 신공항과 관련하여 자세한 기사를 보도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필자가 판단한 결론이 그러하다.


공항 개장이 미뤄지는 원인으로 심각한 설계 오류를 이야기한다. 필자 역시 블로그에서 이와 관련하여 이야기하기를 "차라리 다른 부지에 공항을 새로 지었다면 벌써 개장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바 있다. 이미 지은 건물에서 설계를 뜯어고치려니 답이 없어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설계 오류 정도가 아니었다. 무자격 업체가 난립하며 벌어진 촌극이었다.


베를린 신공항 프로젝트는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기 독일은 소위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들으며 경기 침체에 시달리던 시절이었고, 당연히 연방정부는 조금이라도 공사비를 줄이고자 경쟁입찰을 남발하게 된다. 기존 쇠네펠트 공항을 활용하면서 확장하는 신공항 프로젝트를 택한 것도 같은 이유다. 기존 공항을 활용하니 공사비를 줄일 수 있을 거라 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가 입찰한 하도급 업체 수십곳이 공사에 참여하였는데, 전문 분야도 아니면서 단지 공사비를 싸게 적어낸 업체가 선정되는 등 일차적인 부실이 있었다.


전문 분야가 아니니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노릇. 치명적인 설계 결함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게다가 하도급 업체를 관할해야 할 이사회는 이 많은 업체를 일일이 감리 감독할 능력이 없어 사실상 방관하다가 이 지경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2012년으로 예정된 개장이 미뤄지면서 독일은 방식으로 바꾸기로 한다. 대규모 기간산업 건설 분야에 경험이 있는 시공사를 선정해 맡기기로 한 것이다. 함부르크에 본사가 있는 임테크(Imtech)가 선정되었다. 기한을 정해 공사를 완료하는 조건으로 공사비 전액을 선지급하기까지 했다.


아마 임테크라는 회사를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손흥민 선수가 함부르크SV에서 뛸 때 함부르크 축구장 이름이 임테크아레나였다. 임테크가 자기 도시의 분데스리가 축구장에 네이밍 스폰서를 한 것이다. 그 정도로 임테크는 근본 없는 회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총 공사비를 선지급 받으니, 막대한 돈을 수중에 쥐고 나서 마음이 바뀐 모양이다. 임테크는 하도급의 규모를 더 키웠다. 원가를 절감하는만큼 자기들의 수익이 늘어나니까. 수십 곳의 하도급 업체도 관리하지 못해 그 난리가 났는데 임테크는 하도급 업체를 200곳으로 늘렸다고 한다.


하지만 관리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 여기저기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결국 예정된 기한을 넘겨버린다. 이제 초과된 기간의 사업비는 임테크가 감당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임테크는 파산에 이른다. 독일 굴지의 건설기업이 당장의 이익을 쫓다가 아예 망해버렸고, 신공항은 다시 표류하게 된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말이 있다. 원가를 절감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면 그것은 전부 사기업이 가져가고, 이 때문에 문제가 생겨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면 그것은 전부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건설현장마다 원가절감을 빌미로 등장하는 하도급의 난립 문제가 베를린 신공항을 이 지경으로 몰고 간 직접적 원인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건물을 해체하고 다시 지어야 할 정도의 심각한 오류가 가득한데 계속 하도급 업체를 쥐어짜며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니 실질적으로 시간만 끌었을뿐 변변한 진전이 없다. 기한을 정해놓고 닥달만 하니 미봉책으로 떼우려다 더 큰 오류가 터져나와 또 개장이 연기되는 식이다. 가령, 처음 불거진 설계 오류는 화재경보 시스템의 문제였는데, 이것을 미봉책으로 떼우려니 건설사 측에 내놓은 해결안이 "비정규직을 대거 고용해 화재 발생을 상시 감시하며, 화재 발생 시 무선통신(아마도 휴대폰)으로 공유한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만우절 농담이었기를 바란다.


현재 베를린 신공항은 2020년에 개장하는 것으로 발표되어 있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 아무도 믿지 않는다. 적어도 독일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하도급으로 당장은 돈 몇 푼을 절약하는(또는 남겨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훨씬 큰 리스크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당장 돈 몇 푼을 더 쓰더라도 정확한 계획과 설계에 따라 빨리 끝내는 게 사회적 이득이라는 것을.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도 여기서 배울 교훈이 분명히 있다. 누구를 위한 원가절감인가, 그 이익은 누가 갖고 그로 인한 손실은 누가 감당하는가, 우리도 분명히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