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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329. 그림 형제의 발자취

영화와 드라마로도 종종 다뤄져 그림 형제(Brüder Grimm)를 들어보지 않은 분들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영화와 드라마가 너무 엉뚱한 내용이기 때문에 진짜 그림 형제가 뭐하던 사람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고, 그림 형제를 제대로 들어본 분도 그들의 동화책을 통해 접했을 테니까 그들이 동화 작가라고 잘못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그림 형제 이야기입니다.

형 야콥 그림(Jacob Grimm)과 동생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 그림 형제는 19세기초 독일에서 활동한 언어학자입니다. 그들은 독일어를 연구하고자 각 지역의 민담을 수집했습니다. 아무래도 민담은 평범한 민초들의 언어로 만들었을 것이고, 그 민담이 전해지는 지역의 방언으로 전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민담을 모아 비교하면 각 지역별로 평범한 사람이 사용하는 일상적인 독일어의 문법과 방언의 차이를 알 수 있겠죠. 그런 이유로 '이야기'를 모으고 다니며 연구하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모은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출간합니다. 이게 소위 <그림 동화>로 불리는 <어린이와 가정의 이야기(Kinder- und Hausmärchen)>입니다. 여기에 수록된 단편이 라푼젤, 헨젤과 그레텔, 신데렐라, 빨간 모자, 브레멘 음악대, 백설공주 등 절대 모를 수 없는 세계적인 동화들입니다. 구전동화라는 게 마냥 밝고 행복하지만은 않았겠죠. 엽기적이고 선정적인 내용도 많았는데, 초판 출간 후 시끄러워지자 여러 이야기를 삭제했다고 합니다. 다만, 여러분이 인터넷으로 검색할 때 "그림동화 원작"이라며 어마어마한 잔혹동화인 것처럼 소개되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아무튼, 그림 형제는 당대 무시못할 업적을 남긴 위인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독일에서도 그림 형제와 연관이 있는 곳에서는 이들과의 인연을 기리며 많은 흔적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고향 하나우(Hanau)에는 큰 동상을 세웠어요. 무려 "국립 동상(Nationaldenkmal)"입니다. 국가 차원에서 그림 형제를 기리고자 동상을 세울 장소를 공모하였고, 여러 곳에서 원했으나 최종적으로 고향 하나우가 뽑혔다고 합니다.

어렸을 적 살았던 슈타이나우(Steinau an der Straße)에는 그림 형제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들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후술할 그림벨트가 생기기 전까지 그림 형제 관련 박물관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하나우와 슈타이나우 모두 프랑크푸르트 근교에 있습니다.

그림 형제가 대학교를 다닌 도시 마르부르크(Marburg)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마르크그라프성에 오르다보면 이렇게 빨간 구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걸 보게 됩니다. 이게 뭘 뜻하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그림 형제가 김나지움(인문계 초등학교)에 다녔으며 대학교 졸업 후 도서관 사서로 취업했던 도시 카셀(Kassel)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림 동화>가 바로 여기서 탄생했거든요. 실제로 동화책 원본은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박물관에 전시 중입니다. 카셀은 그림벨트(Grimmwelt)라는 대형 박물관 겸 시청각 전시실을 만들었습니다.


마르부르크의 카셀 모두 프랑크푸르트와 같은 헤센(Hessen)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후 그림 형제는 괴팅엔 대학교의 교수로 초빙됩니다. 괴팅엔(Göttingen)은 당대 톱클래스의 대학교가 있는 도시였구요. 이를 기념하여 <그림 동화>에 실린 이야기 '거위치는 소녀'를 형상화 한 분수를 설치하였습니다. 이 분수는 '거위소녀 리젤'이라고 불립니다. (리젤은 엘리자베트의 애칭이며, 정작 동화 원본에는 주인공 공주의 이름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건이 생깁니다. 괴팅엔 대학교는 하노버 왕국의 영토에 있었는데, 당시 하노버의 새 국왕이 노골적으로 헌법을 무시하자 괴팅엔 대학교 교수 7명이 이에 항의하는 서한을 발표합니다. 국왕은 교수 7명을 모두 해임하고 추방했어요. 그림 형제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들은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히 할 말을 했다가 추방당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림 형제 정도 되는 석학을 내버려둘 리가 없죠. 프로이센에서 당장 스카웃하여 베를린 대학교의 교수로 초빙합니다. 이후 그림 형제는 쭉 베를린에 살며 연구하고 가르치다가 둘 다 베를린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형 야콥은 미혼이었다고 하고, 동생 빌헬름은 4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하네요.

옳지 않은 국왕에게 직언을 할 정도의 성품이 어디 가겠습니까. 1848년 프랑크푸르트에서 국민의회가 소집되어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독일을 입헌군주국으로 개혁하는 혁명이 시도되었는데, 그림 형제는 국민의회의 대표단으로 참가했다고 합니다. 당시 국민의회가 열린 파울 교회에 이런 벽화가 있는데, 여기 나오는 사람들이 당시의 국민대표를 묘사한 것이라 합니다. 즉, 여기 어딘가에 그림 형제도 그려져 있을 겁니다.


그토록 유명한 동화책을 만든 작가이기 이전에 학자이며 사회 지도층이었던 그림 형제의 발자취를 독일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