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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331. 브레멘 롤란트의 아이러니

동화 이야기를 하면 반드시 언급되는 도시 브레멘(Bremen)의 이야기를 하나 더 풀어놓습니다.


제가 작년 여름에 <브레멘 음악대> 관련 포스팅에서 브레멘 음악대의 "아이러니"를 짚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하기를, 브레멘의 아이러니가 하나 더 있다고 했었죠.

이번 글이 바로 그 두 번째 아이러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두 가지 아이러니는 <유피디의 독일의 발견>에 소개된 49가지 에피소드 중 하나입니다.

두 번째 아이러니의 주인공 롤란트(Roland)를 소개합니다.

롤란트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해도 상당한 분량이 필요합니다. 나중에 별도의 글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 말씀드리고, 여기서는 이렇게만 정리하고 시작할게요.


"독일의 많은 롤란트 중 브레멘의 롤란트가 단연 최고"라고요.


롤란트는 말하자면 수호성인입니다. 적군이 쳐들어오는 걸 막아달라며 세워둔 거죠. 그래서 중세에 롤란트를 세워둔 나라(독일의 전신인 신성로마제국 내에서도 수많은 나라가 존재합니다)는 매우 많았지만, 그것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케이스는 많지 않고, 그 중 단연 으뜸은 브레멘의 롤란트입니다. 무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브레멘 시청사입니다. 착시효과처럼 숨어있지만 조금만 집중해서 보아도 롤란트가 보일 겁니다. 이렇게 시청사와 그 앞의 롤란트까지 묶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그런데 다른 도시에 남아있는 롤란트를 보면, 대개 시청 앞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청은 도시의 상징적 장소라 할 수 있겠고, 도시에 쳐들어오는 외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수호성인이니 당연히 시청에 쳐들어오는 적군을 향해 칼과 방패를 들고 있어야겠죠.


그런데 위 사진에서 보듯이 브레멘의 롤란트는 시청의 측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굉장히 이례적입니다.

롤란트가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대성당이 있습니다. 롤란트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만, 롤란트는 아마도 대성당으로부터 도시를 지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브레멘은 함부르크와 마찬가지로 자유도시입니다. 신성로마제국에서 특정국가에 속하지 않고 자유로운 지위를 인정받았던 곳입니다. 당연히 그 원천은 항구도시 브레멘을 통한 교역에서 얻어지는 부(富)였겠죠. 상인이 도시의 메인스트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상인과 대척점에 있던 종교세력의 상징은 대성당은, 브레멘의 메인스트림이 보기에 영 껄끄러운 존재였을 겁니다. 그래서 대성당을 향해 롤란트가 칼과 방패를 들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요?

이런 특별한 롤란트입니다.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을 침공하여 정복하였을 때, 나폴레옹은 롤란트를 본국으로 가지고 가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전 세계에서 약탈(!)한 보물이 프랑스의 박물관을 매우고 있죠.


그 때 브레멘 시민들은 프랑스군을 설득합니다. 롤란트가 사실은 별 의미없는 돌덩이에 불과하다, 가치도 없다, 블라블라. 흥미가 떨어진 나폴레옹은 롤란트를 내버려두고 지나갑니다.


롤란트가 도시의 수호성인이라고 했죠. 도시를 지키라고 만든 건데, 정작 나폴레옹에게 함락당하는 것은 지켜주지도 못했으면서 오히려 시민이 나서서 롤란트가 약탈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었습니다. 두 번째 아이러니입니다.

브레멘에 축제가 열렸습니다. 시청 앞 광장에서 축제가 열리는 동안 롤란트는 이처럼 축제의 "도우미" 역할을 합니다. 이 정도로 롤란트는 브레멘 시민의 일상 속에서 마치 한 명의 시민처럼 친근한 위치에서 자신의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시민을 지켜달라며 만들었지만 아이러나니하게도 시민이 지켜준 롤란트. 동화 같은 도시 브레멘이 들려주는 아이러니한 동화입니다.


아, 참고로 롤란트의 원본 머리는 박물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롤란트는 목 위는 카피캣이고, 목 아래는 오리지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