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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355. 독일의 모서리, 그리고 독일 기사단

한동안 뜸했던 재미없는 역사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코블렌츠(Koblenz)에 도이체스 에크(Deutsches Eck)라는 장소가 있습니다. 직역하면 "독일의 모서리"라는 뜻이며, 두 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니까 실제로 모서리인 건 맞습니다.

그런데 도이체스 에크가 유명한 것은 여기에 놓인 거대한 기마상 때문인데요. 바로 독일제국의 첫 황제 카이저 빌헬름 1세의 기마상입니다. 이 정도까지가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여행정보입니다.


그런데 궁금했습니다. 왜 여기를 "독일의 모서리"라고 부를까? 독일 수도도 아니고 독일의 발상지도 아니고, 그냥 황제 기마상 하나 세웠다고 한 나라의 모서리라고 부르는 건 좀 오버잖아요. 기원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이름이 바로 독일 기사단입니다.


아마 독일 기사단이라는 이름보다 튜튼 기사단(Teutonic Order)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지 모릅니다. 중세의 전쟁사를 소재로 하는 게임이나 작품에서 늘 등장하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영어식으로 "튜튼"이라 번역되는 Teutonic은 Theodiscus와 어원이 같습니다. Theodiscus에 대해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언어를 정리하며 한 번 이야기했었죠. 바로 "도이치(Deutsch)"의 어원입니다. 즉, 튜튼은 도이치입니다. 그래서 튜튼 기사단을 독일 기사단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튜튼 기사단의 역사는 매우 복잡합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십자군 전쟁 당시 구호와 의료를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였으며 이후 기독교를 수호하는 군사조직화 됩니다. 그들은 동유럽의 끄트머리에서 이방인의 침공을 막고 이교도를 개종시키거나 몰아내어 기독교의 영토를 지키고 확장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기독교의 시선에서 기술한 것이며, 지금은 기사단의 개념을 설명하고자 하는 목적이니 감안하여 독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튜튼 기사단이 최종 정착한 곳은 오늘날의 폴란드와 발트3국. 원래 폴란드에서 이민족의 침공을 막아줄 용병으로 고용한 것이었는데 이내 세력을 키워 자기들의 나라를 만들어버립니다. 독일기사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입니다. 이들은 유럽 각지에 지부를 두었으며, 당시 트리어 대주교가 의료진이 필요해 튜튼 기사단을 초빙하여 땅을 주고 봉사케 하였는데, 바로 여기가 코블렌츠입니다.

코블렌츠에 있는 튜튼 기사단 하우스(Deutschordenskommende)입니다. 기사단의 있던 장소가 바로 그 두물머리, 그래서 도이체스 에크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독일의 모서리"라 이야기했던 그곳은, 사실은 "튜튼 기사단의 모서리"라고 번역했어야 옳았던 거죠.


그런데 이들의 어마어마한 팽창을 두고볼 수 없었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연합이 대대적인 전쟁을 벌였고, 튜튼 기사단이 패합니다. 이때 기사단의 지도자 중 한 명이 종교개혁에 감화되어 개신교로 개종하고 나라를 기사단국이 아닌 세속국으로 변경하였으니, 이렇게 생긴 나라가 바로 프로이센입니다.


프로이센은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중앙으로 진출하여 브란덴부르크 공국과 합병하고 브란덴부르크 공국의 중심지였던 베를린에 터를 내리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이 스토리는 쾨니히스부르크와 연관된 글로 한 번 소개해드린바 있습니다.

결국 프로이센의 뿌리가 튜튼 기사단이고, 프로이센이 오늘날 독일의 기틀이 되었으니 오늘날 독일(오스트리아 제외)이라는 나라의 역사에 있어 튜튼 기사단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1871년 독일제국이 출범하고 1888년 카이저 빌헬름 1세가 서거하였습니다. 이후 카이저 빌헬름 1세의 기념비를 짓기로 결정하고 그 장소를 물색하였는데, 독일 여러 지역에서 서로 유치하려고 경쟁이 붙었으며 최종적으로 코블렌츠의 도이체스 에크가 선정되었습니다. 튜튼 기사단과 프로이센의 연관관계에서 이러한 결정이 내려졌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튜튼 기사단은 1800년대에 다시 부활하는데, 이것은 진짜 기사단이 되살아났다기보다는 튜튼 기사단의 이름을 사용하는 구호단체가 생긴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 본부는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 있습니다.

튜튼 기사단의 상징인 하얀 바탕의 검은 십자가 방패 문양을 계승하였지만 중세의 튜튼 기사단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습니다. 만약 프로이센 이전의 튜튼 기사단의 흔적을 보고 싶다면 가장 좋은 곳은 말보르크(Malbork)입니다. 당시 독일기사국의 근거지인 폴란드 북부에 있습니다. 당시 이름은 독일어로 마리엔부르크(Marienburg)였고, 폴란드어로 말보르크라 합니다.

말보르크에 튜튼 기사단의 성채가 남아있습니다. 기사단의 흔적을 느끼기에 여기보다 좋은 곳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