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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353. 독일 뚜벅이 여행자를 위한 주의사항

독일에서는 베를린을 제외하면 대도시라 부를만한 곳이 드뭅니다. 흔히 대도시라고 부르는 뮌헨, 함부르크도 인구 200만명이 안 됩니다. 서울 1천만 인구는 말할 것도 없고 서울의 위성도시인 수원, 성남, 고양 등의 인구가 100만명을 넘는 마당에 인구 100~200만명선의 뮌헨, 함부르크 등을 대도시라 부르기는 좀 그렇죠.


단순히 인구수만 가지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도시는 대개 볼거리가 시내 중심부에 밀집되어 있습니다. 대도시라 하더라도 걸어서 여행하는 순간이 대부분이죠. 게다가 소도시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독일이기에 걸어서 3~4시간이면 다 구경할 수 있는 정말 예쁜 소도시도 수십 곳에 이릅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도보 여행이 표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신이 걷는 만큼 여행의 만족도는 정비례합니다. 하여, 준비했습니다. 독일에서 걸으며 여행할 때 알아두면 좋을 주의사항입니다.


1. 자전거도로는 절대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보도블럭에 선만 그어놓고 자전거도로를 구분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한국과 달리 독일의 자전거도로는 오직 자전거를 위한 공간입니다. 여기에 보행자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은 물론 혹 자전거와 추돌사고라도 발생하면 보행자의 과실입니다. 그런데 위 사진에서 보듯 자전거도로의 구분이 강조되지 않는 장소도 많습니다. 보도블럭과 경계가 없기 때문에 자칫 관광에 정신이 팔리면 자전거도로에 발을 들여놓게 되니 반드시 주의가 필요합니다. 저도 관광에 집중하다가 자전거도로에 들어간 순간이 여러 번 있었는데, 뒤에서 달려오는 자전거 이용자에게 온갖 욕은 다 먹었습니다. 자전거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여기에 보행자가 들어올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므로 갑자기 사람이 앞에 나타나면 대처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2. 신호등은 자동으로 바뀌지 않는다.

교차로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녹색 불이 들어오지 않아요. 신호등에 달려 있는 이런 기계를 작동해야 보행자 신호가 들어옵니다. 한국에도 이런 신호체계를 가진 곳이 있죠. 주로 보행자가 별로 안 다니는 외딴 교차로가 그러한데요. 독일은 대도시에서도 이런 신호 체계를 유지합니다. 물론 대도시는 보행자가 많다보니 내가 기계를 작동하지 않아도 주변에 누군가가 해주겠지만 소도시에서 나 혼자 교차로에 있다면 "신호등 고장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기계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버튼을 누르는 것과 문지르는 것. 만약 기계에 "누르세요(드뤼켄; drücken)"라고 적혀있다면 꾹 눌러주시고, "문질러주세요(베뤼렌; berühren)"라고 적혀있다면 손끝이나 손바닥으로 쓱쓱 문질러주세요. 위 사진에 "지그날 콤트(Signal kommt)"라는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데, "신호가 온다(=녹색 불이 곧 켜진다)"는 의미입니다.


3. 선 없는 횡단보도가 있다.

횡단보도는 기본적으로 한국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간혹 바닥에 선이 그려지지 않은 횡단보도도 보일 거에요. 독일에서 찍어둔 사진이 없어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사진을 올리는데, 여기 있는 파란색 원에 화살표 그려진 표지판이 바로 횡단보도를 뜻합니다. 이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는 바닥에 선이 그려져 있지 않아도 보행자가 건너가도 됩니다. 운전자가 반드시 멈춰서 기다려줘야 합니다. 무단횡단 시에도 어지간하면 운전자가 차를 멈추고 기다려주는 편이기는 합니다만, 불법은 불법입니다. 재수 없으면 단속반에 걸려 과태료를 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4. 도로명 주소는 어디에나 있다.

독일은 도로명 주소 체계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어느 거리에 있는지 곳곳에 표지판이 발견되므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즘이야 스마트폰으로 정밀 지도를 가지고 다니는 세상이라 실감이 덜하지만, 그런 것 없이 지도 한 장 들고 길 찾을 때 이런 도로명 주소 체계는 정말 편리합니다. 구불구불한 미로 같은 소도시의 구시가지에서도 도로명 주소 덕분에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건물은 입구 부근에 번지수를 표기합니다. 무슨 거리 몇 번지, 간단한 주소만 가지고 목적지 찾아가는 게 너무 쉽습니다.


5. 울퉁불퉁한 길이 많다.

특히 소도시로 갈수록 이런 울퉁불퉁한 돌바닥이 많습니다. 자동차도 자전거도 보행자도 모두 이런 길을 다니게 됩니다. 이런 길에서 캐리어를 끌고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힘든 건 둘째치고 캐리어 바퀴가 박살날 위험도 있습니다. 이런 길에서 굽 높은 구두나 '쪼리' 같은 슬리퍼를 신고 걷는다 생각해보세요. 걷는 게 스트레스겠죠. 신발에 쿠션이 적으면 저처럼 나이 먹은 사람은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하기도 합니다. 여행 중 어떤 가방과 신발을 챙겨야 하는지는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설명이 끝날 것 같습니다. 물론 큰 도시는 그렇지 않습니다만 독일은 큰 도시만 여행하는 게 매우 아까운 나라입니다.


6. 보행자도 모세의 기적에 동참해야 한다.

독일판 모세의 기적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구급차가 소방차가 지나갈 때 모든 차량이 좌우로 비켜서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응급차량의 길을 터주는 동영상 말입니다. 그런데 고속도로라면 갓길로 피하겠지만 갓길이 없는 시내에선 어떻게 될까요? 자동차들이 좌우로 비켜서 길을 열어주려면 어쩔 수 없이 자동차도 자전거도로나 보행자도로까지 올라와야 합니다. 그래야 응급차량이 지나갈 틈이 생기니까요. 그렇다는 것은,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보행자인 나도 최대한 차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피하며 다음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위 사진이 그런 상황입니다. 길을 걷는데 뒤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보고 다시 앞을 쳐다봤더니 이렇게 돼 있었습니다. 보행자도 모세의 기적에 동참해야 됩니다.


7. 우측통행은 적당히 신경쓰도록 한다.

자동차와 자전거는 모두 우측통행이 기본입니다. 보행자는 강제적인 규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기본적인 교통질서가 우측통행을 기준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보행자 역시 우측통행을 기본적으로 준수하는 편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만약 우측통행을 하지 않을 경우 다른 보행자와 동선이 겹쳐 내가 불편해지는 순간을 종종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과 부딪히면 영어로 "Excuse me" 정도의 인사말이라도 반드시 해줘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몹시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됩니다.


이상으로 독일여행 중 보행자의 시선에서 주의해야 할 7가지를 정리해보았습니다. 번외편으로 딱 3가지 더 단문형으로 덧붙이며 10가지를 채울게요.


8. 길을 걷다가 배속에 신호가 오면 급하게 찾아갈 화장실은 거의 없습니다. 한국과 달리 건물이나 상업시설에서 화장실을 개방하지 않기 때문이고, 지하철역도 작은 역은 화장실이 아예 없습니다. 그러니 화장실은 틈나는대로 미리미리 해결해두셔야 합니다.


9. 공공 와이파이가 제공된다는 팻말이 보여도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속도도 느리고 음영지대도 많아서 전파 잡히는 곳을 찾아 스몸비처럼 떠돌아야 하니까요. 길을 걸으며 와이파이로 접속해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하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게 속 편합니다.


10. 여름에는 덥습니다. 열심히 걷다가 너무 더워서 좀 쉬고 싶지만 돈을 쓰고 싶지는 않을 때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바로 교회입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종교행사 시간을 제외하고 일과시간에 문을 열어둡니다. 교회는 천장이 높아 여름에도 시원합니다. 몇분만 앉아있다 나가도 땀이 다 식을 겁니다.


저부터가 여행 중 걷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기도 하고, 작가가 된 이후로는 취재 때문에라도 걷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보고 경험하며 쌓은 노하우들입니다.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독일여행의 전략과 실용정보를 제시하는 책의 시초가 <프렌즈 독일>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아울러 위 내용은 큰 도시나 작은 도시나 거의 동일하게 적용되는 주의사항이지만 베를린에서만큼은 자동차 운전자가 절대 자비가 없으니 무단횡단은 금물이며 신호등도 자동으로 바뀌는 교차로가 많다는 예외가 존재함을 마지막으로 덧붙입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