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두.유. Travel to Germany

#370. 호프브로이하우스의 다섯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맥줏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뮌헨의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는 그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거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 중 다섯 가지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1. 호프브로이하우스는 맥주가격 절약을 위해 만들어졌다.

16세기 당시 바이에른은 적극적으로 맥주를 양조하는 지역은 아니었습니다. 독일 북부가 맥주를 많이 마셨죠. 그래서 바이에른 왕실에서도 맥주를 수입해서 마셨는데 너무 비싸요. 그래서 우리도 맥주를 만들어 싸게 먹자며 뮌헨에 만든 왕실 양조장이 바로 호프브로이하우스입니다. 돈 많은 왕실이 굳이 저렴한 맥주에 관심이 없었다면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2. 호프브로이하우스는 바이에른의 돈줄이었다.

돈을 아끼려고 만들었더니 이게 엄청난 돈줄이 됩니다. 17세기경 바이에른의 수입 30~50%가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창출되었다고 합니다. 30년 전쟁을 치를 때에도 군사자금을 조달하는 중요한 통로였습니다. 오늘날에도 호프브로이하우스의 상표권을 가진 바이에른 주정부가 이름 사용에 대한 대가로 매년 250만 유로를 벌어들인다고 합니다.


3.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자체 상품권이 있었다.

매일 수만명이 찾아왔습니다. 그 중 대부분이 단골입니다. 이들은 아예 자기 전용 맥주잔을 들고 다니며 맥주를 마실 정도로 충성도 높은 고객이었습니다. 이에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자체적으로 토큰을 만들어 판매했고, 사람들은 토큰을 사두었다가 맥주와 바꿔먹었습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상품권을 판매한 셈입니다.


4. 호프브로이하우스는 2호점이 있다.

이건 블로그에 한 번 소개한 적 있습니다. 호프브로이하우스 방문객이 너무 늘어나자 바이에른 왕실은 1896년 2호점인 호프브로이켈러(Hofbräukeller)를 만들어 맥주 양조시설까지도 이쪽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본점은 허물고 다시 크게 확장하여 새로 오픈한 것이 오늘날의 모습입니다. 당시 본점을 재건축하는 데에 들어간 돈을 오늘날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수백만 유로에 달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오늘날에는 시 외곽에 대형 맥주공장을 지어 맥주를 양조하고 있습니다.


5.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독재가 잉태되었다.

호프브로이하우스는 뮌헨의 사랑방이었습니다. 모두가 일과를 마치면 여기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죠.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국가사회당(나치)의 창당을 추진한 장소도 여기, 그 악명높은 25개조 강령을 발표한 장소도 여기입니다. 너무 유명한 사랑방이었기에 독재도 잉태되었던 아이러니한 역사입니다.

너무 유명한 나머지 관광객도 많이 찾아서 오히려 맥주 마니아는 호프브로이하우스를 잘 안 가게 된다는 말도 들어보았지만, 이러쿵저러쿵해도 뮌헨의 역사와 함께 한 사랑방입니다. 많은 스토리가 있고, 여전한 맥주와 음식이 있습니다. 여기서 수백년 전 뮌헨 시민과 똑같은 맥주를 마시며 떠드는 것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이상의 체험을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뮌헨은 1일 1맥주도 아쉽습니다. 1끼 1맥주를 기본으로 생각해도 되는 도시입니다. 이런 유명한 비어홀에서 한 잔, 비어가르텐에서 한 잔, 동네에 숨어있는 조용한 가게에서 한 잔, 아니면 마트에서 캔맥주를 사서 숙소에서 한 잔, 그런 식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맥주를 즐겨보세요. 그게 뮌헨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감히 이야기합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