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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372. 안전에 대한 단상

독일 알프스 최고봉인 추크슈피체에 올라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해발 3천 미터에 육박하는 알프스 정상에 황금 십자가가 있습니다. 원하면 십자가까지 직접 등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시면, 좌측 하단의 앙상한 사다리가 이 절벽에 오르는 시설의 전부, 그리고 십자가 주변의 와이어가 안전시설의 전부입니다. 발을 헛디디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실족할 위험한 곳에 안전시설이 이게 전부이더란 말입니다.


물론 악천후가 심하거나, 길이 얼어서 몹시 위험할 때에는 아예 진입을 통제합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아찔한 코스를 변변한 안전장치 없이 등반하도록 하는 건 우리네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참고로, 현지인은 대개 안전장치를 직접 지참하여 방문합니다. 즉, 와이어에 결착할 고리나 안전헬멧 등을 가지고 와서 스스로 안전을 챙기면서 등반합니다.


이번 헝가리 유람선 사고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구명조끼의 부재를 황당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동안 유럽에서 숱하게 배를 탔는데 한 번도 구명조끼를 입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것도 안전에 있어 타협이 없는 선진국에서도 말입니다. 저는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번 사고 이후 여론을 보면서 "왜 그동안 한 번도 구명조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는 하더군요.


자료를 좀 찾아봤습니다. 구명조끼는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착용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강이나 호수에서는 수상스키 등 위험이 동반하는 액티비티를 즐길 때에 구명조끼를 착용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배가 뒤집어질 것을 대비하여 입는 안전장비라고 합니다. 그러니 강에서 배를 탈 때 구명조끼를 입지 않는 건 일반적인 범주에 속합니다.


그래도 안전을 챙기면 손해볼 건 없잖아요. 일반적이고 아니고간에 저들은 왜 구명조끼에 둔감했을까요? 서두에 소개한 추크슈피체 봉우리가 생각났습니다. 유럽인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스스로의 안전은 스스로가 챙긴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산이나 물에서 안전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우리 눈높이보다 낮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알프스에서 사람들이 산을 타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장비를 챙겨온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절벽을 타고 올라갑니다. 여기가 등산로인 건 아닙니다. 그러니 사진 속의 사람들은 자기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길은 들어가지 말라고 막아놓거나 표지판이라도 세울법 한데 그런 게 없습니다. 우리와는 사고의 방식이 아예 다르죠.

호수에서도 특별히 입수금지 경고판이 없는 경우 자유롭게 수영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공공 수영장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안전요원은 없어요. 아주 위험한 곳이나 수원을 보호해야 하는 곳은 입수를 금지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자기가 자기 안전을 책임진다는 전제 하에서(또는 부모가 자녀 안전을 책임진다는 전제 하에서) 입수를 막지 않는 개념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유럽에서는 안전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다릅니다. 이걸 안전불감증이라 이야기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보구요. 문화차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겠습니다.


비단 유럽만 그런 게 아니라 서양의 사고방식이 비슷합니다. 가령,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에서 사람이 떨어져 사망하는 사고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죠. 안전 펜스가 없기 때문인데, 그걸 안전불감증이라 이야기하기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목적은 없습니다. 산에 오를 때, 물에 들어가거나 배를 탈 때, 우리와는 인식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여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여행을 즐기는 게 필요하겠습니다. 저부터도 여행 관련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동안 문제의식 없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 인식했던 것을 자책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사고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