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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추천 여행테마

암스테르담과 베를린의 소녀

TV를 보지 않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제가 쓴 여행지와 관련된 프로그램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낯선 외국의 한복판에서 정상급 가수들이 버스킹을 하는 프로그램에서 이번에 독일 베를린을 간다고 하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글이 등록된 시점에는 방송이 나간 이후겠지만, 작성하는 지금은 방송 전입니다. 방송에 어떤 장소가 나올지 모릅니다. 베를린과 암스테르담을 방문한다는 예고편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쩔 수 없이 두 도시의 교집합을 떠올렸습니다.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의 수도,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입니다. 두 나라의 수도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한 명의 인물이 겹쳐집니다. 바로 이 사람입니다.

외국인이지만 이 사진이 너무 유명해서 많은 분들이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바로 안네 프랑크(Anne Frank). 나치 독일의 박해를 받은 유대인 피해자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죠. 암스테르담과 베를린에 안네 프랑크 박물관이 존재합니다. 이게 방송과는 전혀 무관한 제가 떠올린 두 도시의 공통점입니다.

안네 프랑크는 프랑크푸르트에 살다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 중립국인 네덜란드로 피신했습니다. 하지만 나치는 네덜란드도 점령했고 암스테르담의 유대인을 닥치는대로 끌고 갔죠. 안네의 아버지는 공장을 개조하여 은신처를 만들고 책장으로 위장해 그 존재를 외부에서 알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마치 첩보영화에 나올법한 위장 가옥에서 안네 프랑크는 약 2년간 숨어 지냈습니다. 너무 심심해 일기장에 이름을 붙여주고는 서로 대화하듯 일기를 적었죠. 이게 <안네의 일기>. 전쟁 피해자의 감정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귀중한 사료(史料)이며, 이 덕분에 안네 프랑크가 희생자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영화 같은 위장 가옥은 안네 프랑크 하우스(Anne Frank Huis)라는 이름의 박물관으로 공개되어 있고, 암스테르담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 꼽힙니다. <안네의 일기> 원본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베를린과 안네 프랑크는 무슨 인연이 있을까요? 사실 아무 인연이 없습니다.

그런데 베를린에도 안네 프랑크 센터(Anne Frank Zentrum)이 있습니다. 안네가 실제 살았던 집이나 기타 연고가 있는 건 아닙니다만, 가해자인 독일에서 자발적으로 만든 기념관입니다. 암스테르담의 안네 프랑크 하우스는 종종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순회 전시를 하곤 했는데, 베를린에서의 순회 전시가 아주 큰 울림을 주었대요. 이후 베를린에서 이런 박물관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위 사진을 보면 굉장히 지저분하고 허름해보이죠?

안네 프랑크 센터가 있는 곳은 슈바르첸베르크 하우스(Haus Schwarzenberg)라 불리는 예술가의 아지트입니다. 낡은 폐허 같은 건물을 가난한 예술가들이 점령하여 자신들의 공방과 갤러리로 만들어버렸고, 낡은 건물에 그들이 어지럽게 남긴 낙서나 그래피티 등이 뒤엉켜 아주 혼란스러운 모습입니다. 이 또한 베를린이기에 가능한 모습이겠죠. 안네 프랑크 센터는 여기의 한 건물에서 한 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겉은 허름하지만 내부는 깔끔합니다. 안네 프랑크와 관련된 사진, 수기, 영상 등 여러 자료를 모았습니다. 적어도 안네 프랑크의 일생을 알고,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나치 독일의 광기를 확인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공간입니다.

암스테르담의 위장 가옥에 숨어있던 안네 프랑크 가족은 누군가의 밀고로 게슈타포(나치의 비밀경찰)에 적발되어 끌려갔고, 강제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KZ Bergen-Belsen)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언니 마르고트 프랑크(Margot Frank)가 먼저 병으로 사망하였고, 곧 안네도 같은 병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1945년 3월이었습니다. 불과 2개월 뒤 독일은 패망하고 강제수용소는 해방되었습니다.


당연히 방송에 안네 프랑크가 언급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성격의 방송이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자유를 원했던 피해자의 아이콘 안네 프랑크를 교집합으로 갖는 두 도시는 마침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득한 '힙스터의 성지'입니다.


그 자유의 에너지가 방송에 담기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리고 두 도시에서 자유의 에너지가 느껴진다면, 반세기 전 자유를 갈망했던 한 소녀를 함께 생각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