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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419. 30년 전 오늘, 독일 라이프치히

10월 9일은 독일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 기념일입니다. 독일 통일의 씨앗이 싹을 틔운 날이죠. 이번 글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인 1989년 10월 9일의 어떤 사건의 현장을 소개합니다.

여기는 라이프치히(Leipzig)의 아우구스투스 광장(Augustusplatz)입니다. 도로 한가운데에 갑자기 달걀처럼 생긴 조형물이 보이죠. "민주주의의 종"이라는 뜻의 데모크라티글로캐(Demokratieglocke)라는 작품입니다. 라이프치히에서 민주주의가 알을 깨고 나왔음을 기념합니다.


대체 30년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1989년은 아직 독일이 분단되어 있을 무렵입니다. 소련은 고르바초프가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점차 붕괴에 가까워지고 동구권에서도 자유의 목소리가 울려퍼진 시기였죠.

동독에서는 라이프치히에서 자유를 외쳤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원하는 시민들이 니콜라이 교회(Nikolaikirche)에 모여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첫 기도회가 9월 4일에 열렸고 이후 매주 월요일 기도회가 열립니다.


동독 정부는 기도회를 막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아무리 공산정권이라 해도 교회 안에서 평화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진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게다가 동독은 언론이 통제된 국가였으니 언론만 입을 다물게 하면 어차피 라이프치히 바깥에서는 이 소식도 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겠죠.

기도회는 점점 커졌고, 교회 안에 다 들어가지 못할 지경이 되자 사람들은 교회 부근 아우구스투스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여기는 라이프치히 오페라극장과 게반트하우스(멘델스존이 지휘했던 유서깊은 악단)가 위치한 넓은 광장입니다.


9월 4일부터 월요일마다 시작된 월요 기도회는 여섯 번째 집회인 10월 9일에 절정을 맞습니다. 이 날은 동독 정부 수립 기념일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행사에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군중이 곧바로 월요 기도회로 자리를 옮겼죠. 라이프치히에서 7만명이 자유와 평화를 외쳤습니다.


동독 정부는 군대를 보내 진압하려 했으나 이미 기세가 너무 커져 강경진압이 불가능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중앙역(Hauptbahnhof) 사진을 보여드립니다. 라이프치히 중앙역은 1915년 건축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기차역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라이프치히는 산업이 발달하였던 도시였고, 분단 후에도 그 인프라를 활용하여 동독에서 라이프치히를 산업 도시로 육성하였습니다.

대문호 괴테의 흔적도 발견되는 라이프치히 구시가지에 들어가보면 중세에 그 규모가 만만치 않았겠다는 걸 느끼게 해줍니다.

1900년을 전후하여 라이프치히가 얼마나 번영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청과 법원 건물입니다. 어마어마하죠. 그 정도로 부유하고 힘이 있는 도시였습니다.


동독은 이런 라이프치히를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산업 박람회를 종종 개최하여 서독 사람도 참석할 수 있게 하였을 정도입니다. 서독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도시였다는 뜻이겠죠.


그러나 이게 화근이었습니다. 라이프치히에 드나들던 서독 사람들이 월요 기도회를 알게 되었고, 이 소문이 서독에 퍼집니다. 그리고 서독의 뉴스에 나옵니다. 동베를린에서는 서독의 뉴스를 몰래 볼 수 있었는데, 그 결과 동독의 수도에 사는 시민들도 라이프치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동독이 언론을 차단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라이프치히의 월요 기도회는 더 커졌습니다. 마지막에는 30만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라이프치히의 인구는 50만명입니다. 동베를린에서도 집회가 열립니다. 결국 동독 정부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 번의 집회가 더 열리고 11월 9일 동독은 시민의 요구대로 여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책을 발표합니다. 사실 알맹이가 있는 대책은 아니었어요. 조삼모사 식으로 불만만 누그러뜨릴 속셈이었죠. 그런데 이 기자회견장에서 발표자의 말실수와 서방 언론의 초대형 오보가 겹치면서 그 날 밤 베를린 장벽은 붕괴됩니다.

라이프치히는 베를린 장벽 붕괴의 시발점이 된 장소입니다. 오늘로부터 딱 30년 전, 광장에서 목숨을 걸고 자유를 외친 수만 명의 용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딱 1개월만에 베를린 장벽을 무너트렸습니다. 목숨 건 진짜 기도회와 헌금 받는 가짜 기도회의 품격의 차이


만약 다른 도시였다면 이런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눈부시게 발전했던 중세의 영광을 가졌고, 그 인프라로 동독이 산업을 육성해 서방에도 자랑하고 싶었던 도시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동베를린까지 소식이 전해져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라이프치히니까 가능했던 사건입니다. 그런 도시니까 아름다운 시가지가 펼쳐질 것은 하나마나 한 소리입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