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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86. 마인츠, 종교개혁의 아이러니

종교개혁을 공부하다 보면 흥미로운 순간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데요. 특히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게 되는 두 가지 장면이 있습니다. 첫번째 장면은 마인츠(Mainz)와 관련 있습니다. 이건 특정 종교의 이야기가 아니라 유럽의 중세 역사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되니까 가볍게 읽으셔도 됩니다.


종교개혁이 발생한 결정적인 계기는 교황청의 면죄부(면벌부) 판매입니다. 돈만 내면 죄를 없애준다는 발칙한 소리였죠. (엄밀히 말하면 죄를 완전히 없앤다는 게 아니라 연옥에서 죄를 씻는 기간을 없앤다는 것이지만 디테일은 우선 생략합시다.) 돈이 부족하면? 조금만 내면 일부 기간의 죄만 없애준답니다. 게다가 돈만 내면 이미 죽은 가족의 죄도 없애준대요.


당시 교황청은 바티칸 대성당 건축을 위한 막대한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빌렸죠. 당대 최고의 부자인 거상(巨商) 야콥 푸거(Jakob Fugger)에게 말입니다.

막대한 돈을 빌렸고 계속 빌려야 되는데 갚을 길이 없어요. 그래서 면죄부를 판매해 돈을 벌어 빚을 갚고 건축비를 충당하려 했습니다. 여기에는 한 명의 브로커(?)가 개입합니다. 당시 마인츠 대주교였던 알브레히트입니다.

마인츠 대성당에 가보면 창문에 역대 대주교의 이름과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 선명하게 보이는 Albrecht von Brandenburg, 이 양반이 바로 면죄부 판매의 브로커입니다. 원래 대주교가 되려면 나이 등의 자격조건이 있는데, 이 양반은 자격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마인츠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뇌물을 주고 그 자리에 오른 거죠.


자기도 막대한 뇌물을 주고 대주교가 됐으니 돈을 벌어야 되잖아요. 마침 교황청도 돈을 갚으려니 돈이 필요해요. 여기서 이해관계가 맞아 알브레히트 대주교가 앞장서서 독일(당시 신성로마제국)에서 면죄부를 열심히 판매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면죄부 사려고 마인츠까지 와야 되면 그건 비효율적이잖아요. 판매책으로 당첨된 이가 푸거입니다. 푸거는 전국에 거점을 두고 무역을 했으니 각 지역마다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푸거를 통해 면죄부를 판매하고, 그 돈 중 일부는 푸거가 채무 변제를 위해 챙기고, 나머지를 알브레히트 대주교에게 보내면, 대주교는 또 자기 몫을 챙긴 뒤 나머지를 교황청에 보냈습니다. 이런 짓을 해대니 종교개혁이 발생한 거죠.


수많은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판매하는데 그걸 일일이 손으로 쓰자니 또 비효율적이죠. 여기서 동원된 것이 당시 막 세상의 빛을 본 인쇄술입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이용해 대량으로 면죄부를 찍어내니 아주 효율적으로 팔아먹을 수 있었죠.

마침 구텐베르크의 고향이 마인츠입니다. 구텐베르크는 (지금의 프랑스 영토지만 당시는 신성로마제국이었던) 스트라스부르에서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했고, 고향으로 돌아와 인쇄 사업을 크게 벌입니다. 하지만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고 해요. 결국 구텐베르크는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고,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인쇄 사업은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다 망해가는 인쇄소에 마인츠 대주교가 VIP 고객으로 등장한 거죠. 만약 이런 VIP 고객이 없었다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도 빛을 보지 못하고 그냥 사장되었을지 모릅니다. 제자들이 넘겨 받은 사업도 망하면 거기서 명맥이 끊겼을 거라 생각하는 게 합리적일 테지요.

자, 종교개혁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의 "완성"은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로 성서를 번역한 것입니다. 성직자가 아닌 일반 개인도 직접 성경을 보고 이해할 길이 생긴 거니까요. 이제 교황청에서 면죄부 판매 같은 비성서적인 짓을 하면 사람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그게 헛소리라는 걸 판단할 길이 생긴 거니까요.


그런데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어도 그걸 사람들에게 보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일이 손으로 써서 책을 만들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독일 전국에서 루터를 찾아와 성경을 구매할 수도 없잖아요. 이때 등장한 게 바로 구텐베르크 인쇄술입니다.


인쇄술의 도움으로 대량 생산된 성서는 더 낮은 가격으로 판매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경이 독일 전국에 보급되었고, 이것이 종교개혁의 완성입니다.


만약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그냥 사장되었다면, 설령 루터가 성서를 번역했다 해도 그것을 독일 전역에 순식간에 전파할 방법은 없었을 겁니다. 종교개혁도 완성되지 못했겠지요.


즉, 구텐베르크 인쇄술은 면죄부 판매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고, 면죄부 판매에 반발해 발생한 종교개혁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하나의 기술이 극과 극의 양쪽에 모두 큰 영향을 준 아이러니가 이렇게 성립합니다.

참고로 마인츠에 구텐베르크 박물관(Gutenberg Museum)도 있습니다. 구텐베르크 활자가 어떻게 세상에 널리 퍼져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데에 공헌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