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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두.유.Travel to Germany :: #187. 아우크스부르크, 푸거, 성 안나, 루터

전편에 이어 종교개혁의 역사적 아이러니 두번째 장면입니다. 이번 무대는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입니다.


먼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이야기를 잠깐 부연합니다. 루터는 원래 법을 전공한 대학생이었습니다. 성직자가 될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부모님 집에 방문하고 다시 학교가 있는 에르푸르트로 돌아오던 중 길바닥에 벼락이 내리치는 걸 목격합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루턴느 그 자리에 엎드려 성 안나에게 기도합니다. "목숨을 구해주면 성직자가 되겠습니다"라구요.

성 안나는 광부의 수호성인이었습니다. 루터의 아버지가 광부였습니다. 광부는 언제 사고가 생길지 모르는 위험한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수호성인이 자신들을 지켜준다며 성 안나에게 기도하는 게 그 시절의 풍습이었다고 합니다. 루터는 광부가 아니었지만 당연히 어린 시절부터 성 안나에게 기도하는 아버지를 보았을 겁니다. 다급한 상황에 성 안나를 찾게 된 것입니다.


(이 스토리를 두고, 루터가 친구와 길을 걷다가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걸 목격하고 성 안나에게 기도했다고 이야기하는 자료도 많은데요. 루터의 생가 등 루터와 관련된 기념관에서는 모두 제가 본문에 적은 스토리를 알려줍니다. 친구가 벼락 맞은 이야기는 아마도 루터의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하려다 살이 많이 붙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우크스부르크에 성 안나 교회가 있습니다. 중세 유럽의 교회는 한 명(또는 복수)의 성인에게 봉헌하여 그 성인의 이름을 붙이곤 했습니다. 성 안나 교회는 광부의 수호성인 성 안나에게 봉헌된 교회인 셈이죠.


당시 아우크스부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제국의회가 열린 막강한 도시였습니다. 전편에 언급했던 야콥 푸거의 본진도 아우크스부르크였어요. 당연히 엄청나게 부유한 도시였겠죠.


종교개혁이 시작된 뒤 제국의회에 루터를 출석시켜 청문회나 재판을 열었던 사례가 많습니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도 루터를 출석시켰는데, 실은 바로 체포할 심산이었습니다. 낌새를 알아챈 루터는 성 안나 교회에 몸을 숨겼다가 밤에 도망쳐 목숨을 구합니다.


그가 처음 성직자가 되겠다고 맹세한 순간, 그가 성 안나에게 목숨을 구해달라고 했었죠. 실제로 성 안나 교회에서 목숨을 구했습니다.

성 안나 교회는 겉에서 보기엔 평범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상당히 화려하고 품격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인테리어가 다 돈이잖아요. 헌금을 많이 받아야 품격 넘치게 꾸밀 수 있는 건데, 성 안나 교회에 돈을 댄 후원자가 바로 푸거였습니다.


푸거는 자신이 죽은 뒤 성 안나 교회의 묘지에 묻힐 것이었기에 생전에 교회를 더 웅장하고 아름답게 가꾸도록 돈을 댔습니다.


푸거는 면죄부 판매에 앞장선 세 개의 축 중 하나였죠. 푸거의 돈은 교황청이 빚을 지고 면죄부 판매에 나서게 된 원인이 되었죠. 그런 푸거의 돈으로 꾸민 교회에서 루터가 목숨을 구했습니다.


성 안나에게 살려달라고 했더니 진짜 성 안나 교회에서 목숨을 구하게 된 것, 알고 보니 그 교회는 종교개혁의 반대편의 주요 인물이 가꾸었다는 것. 이 또한 종교개혁의 방대한 역사 속 아이러니한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