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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300. 독일 빈병보증금 환급기

이 글은 저의 '원죄'를 AS하려는 목적입니다. 누구보다 앞서 독일여행 블로그를 통해 실용정보를 공유했던 사람으로서 몇 가지 잘못된(또는 부정확한) 정보를 퍼트려 다른 사람들도 그걸 그대로 따라하는 걸 볼 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독일의 빈병보증금 환급, 제가 "판트 제도"라고 이름붙인 이것을 정정하려 합니다.


일단 판트 제도라는 용어 자체가 적절치 않습니다. 저 역시 당시에는 독일 유학생에게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썼고,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그 내용이 당연하듯 통용되어 왔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영어 자료를 찾아보아도 Pfand system이라는 표현이 더러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인이 제 아무리 "판트" "판트" 이야기해도 독일인이 못 알아듣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판트(Pfand)라는 단어 자체는 보증금을 뜻하므로 이게 꼭 빈병보증금을 나타낸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환급을 받으려면 "판트, 비테(Pfand, bitte)" 정도로 이야기하면 된다고 했는데,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는 이렇게 할 때 3번 중 1번은 상대가 뭔 소린지 못 알아들어 결국 손짓발짓으로 환급을 받아야 했었습니다. 이제와서 보니 "판트, 비테"라는 말 자체가 어마어마한 에러였습니다. 문제는 (저 역시 유학생에게 배운 것이기는 하지만) 제가 이런 내용을 퍼트리니 많은 분들이 진짜로 "판트, 비테"라고 하고 다니셨다는 겁니다. 저처럼 의사소통의 오류를 겪은 분들에게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독일의 빈병보증금 환급 후기, 다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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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세계적으로도 빈병보증금 제도가 강력하고 이를 통한 자원 재활용의 뚜렷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유명합니다.

페트병이나 캔의 용기에 위 마크가 보이면, 이것은 25센트의 보증금이 추가됨을 의미합니다. 만약 물 1병의 가격이 20센트라면 보증금 25센트가 추가되어 45센트를 내고 구매하고, 나중에 빈병을 돌려주면 25센트를 환급받는 방식입니다.


그동안 저는 이걸 "기본 판트"라고 불렀는데, 정정합니다. 이것은 일회용(Einweg) 보증금입니다. 캔이나 페트병 등 재사용이 불가능한 것은 수거 후 폐기하여 재활용하는데, 이런 제품들이 일회용 보증금 25센트가 추가됩니다.


보통 마트나 슈퍼마켓에서 제품 가격 밑에 조그맣게 +0.25 라는 식으로 적어둡니다. 만약 이걸 보지 못하고 계산대에 가져가면, 분명 20센트짜리라고 해놓고 45센트를 내라고 한다며 외국인한테 바가지 씌운다고 오해할지도 모르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25센트가 우리돈으로 300~320원 정도 합니다.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적은 금액 같지만 캔음료나 병음료의 가격이 1유로 안팎임을 고려하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셈이죠. 저렴한 생수를 사먹을 때에는 제품 가격보다 보증금이 더 비싸요. 그냥 버리면 너무 아깝습니다.


아마 위 사진 속 일회용 보증금 마크는 다른 글이나 뉴스를 통해서도 보신 분이 많을 거에요. 이제 이걸 보여드리겠습니다.

다회용(Mehrweg)이라고 적힌 이 마크가 붙어있다면 이건 15센트 보증금이 추가됩니다. 위 사진에는 마크 옆에 15CENT PFAND라고 적혀있기는 합니다만, 이런 안내가 없어도 이 마크가 있으면 15센트라는 의미입니다. 페트병이나 유리병 중에서도 세척 후 다시 음료를 담아 판매할 수 있는, 재사용이 가능한 재질과 종류를 뜻합니다.


기존에 저는 25센트와 15센트 보증금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는데, 알고보니 이게 다 법으로 정해져 있었어요. 페트의 재질, 두께, 그리고 음료의 종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환경을 생각하면 일회용보다는 다회용이 조금이라도 낫겠죠. 그래서 다회용 용기는 환경부담금을 적게 받고, 일회용 용기는 환경부담금을 많이 받는 취지로 보증금을 덜 받고 더 받고의 차이가 나뉘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다회용 용기의 수거는 법적 의무는 아니라고 합니다. 즉, 소매점에서 타당한 사유가 있을 때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작은 편의점 수준이 아니면 대부분 수거를 받아주는 편입니다.

맥주병은 세척 후 재사용을 여러 번 해도 되는 재질이죠. 그래서 보증금은 8센트입니다. 가장 적어요. "맥주병 = 8센트"는 거의 공식과도 같아서 용기에 별도 표기 자체가 없습니다.


그 외에도 뚜껑이 부착된 맥주병은 15센트, 초대용량 맥주병은 50센트 등 예외적인 사례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큰 틀에서 정책은 같습니다.


그리고 드물게 보증금이 없는 제품도 있습니다. 판트프라이(Pfandfrei)라고 적혀있고, 이것 또한 법으로 대상이 정해져 있습니다. 주로 와인병, 우유나 주스병, 그 외에도 오일이나 소스 등 식재료가 담긴 병은 보증금이 면제됩니다. 또한 자판기에서 파는 제품 역시 보증금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아마 이것은 제품 가격에 이미 포함이 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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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보증금을 환급받는 방법으로 넘어갑시다. 기본적으로 독일의 모든 소매점은 보증금을 환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자신들이 판매하지 않은 것도 환급해주어야 합니다. 물건을 팔기만 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물건의 수거와 재활용까지도 소매점이 일정부분 의무를 공유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니 꼭 구매한 곳으로 갈 필요도 없고 아무 데나 가서 환급받으면 됩니다. 단, 면적 200평방미터 이하의 아주 작은 소매점은 그들이 판매하지 않는 브랜드는 환급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가령, 조그마한 키오스크인데 우리는 벡스 맥주는 안 판다, 그러면 벡스 맥주캔/병의 환급은 거부할 수 있는 식입니다.


한국 역시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등 소매점에서 빈병을 수거하고 보증금을 돌려줄 의무가 있습니다만 잘 안 지켜지는 곳이 많죠. 요일을 정해서 수거한다느니, 1인당 몇 병까지만 가능하다느니, 지금 매장에 둘 곳이 없어 못 받는다느니, 독일에서는 그런 변명이 일절 통용될 수 없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큰 마트나 슈퍼마켓에 설치된 환급기계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수거하는 것도 일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규모 이상의 마트에서는 이런 환급 기계를 설치해둡니다. 이런 기계를 레어구트아우토마트(Leergutautomat) 또는 판트아우토마트(Pfandautomat)라고 부르며, 일반적으로 독일어로 빈병을 뜻하는 레어구트(Leergut) 정도가 적혀 있습니다.


아무튼, Leergut 또는 Pfand가 적혀있거나 병 그림이 그려진 기계를 찾으면 됩니다. 입구 안쪽에 있거나 냉장 음료 파는 곳 부근에 설치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이 기계의 둥그런 구멍에 빈병을 넣습니다. 방향을 어떻게 넣든 관계없습니다. 기계가 바코드를 인식해 보증금이 8센트인지 15센트인지 25센트인지 판별합니다. 환급받을 빈병이 더 있으면 계속 하나씩 집어넣습니다. 다 끝나면 버튼을 누릅니다. 버튼은 터치스크린 내에 나타나든지 투입구 부근 어딘가에 물리 버튼이 존재할 텐데요. 버튼이 딱 하나뿐이라서 헷갈릴 일이 없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이런 종이가 출력됩니다. 해당 마트에서 물건을 사면서 이걸 제시하면 이 금액만큼 할인되구요. 물건 살 것 없으면 그냥 계산대에 이 종이만 제출하세요. 현금으로 바로 돌려줍니다. 이런 쿠폰을 독일어로 레어구트봉(Leergutbon)이라고 합니다.

(Bon은 '본'이 아니라 '봉'이라고 발음하며, 영수증이라는 뜻입니다. 마트에서 물건 사고 계산하면 캐셔가 "봉?" 하고 물어볼 겁니다. "영수증 드릴까요?"라는 뜻입니다.)


제가 찾은 자료에 의하면 레어구트봉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고 들었는데, 이건 검증된 정보는 아니라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튼 여행자가 며칠 이상 쿠폰을 묵혀둘 일은 없을 테니 그 자리에서 바로 사용하거나 현금으로 받으면 되겠습니다.


기계의 인식률은 꽤 좋은 편이에요. 하지만 간혹 인식하지 못하고 도로 뱉어내는 경우도 있는데요. 캔이나 페트병이 찌그러져 바코드 부분이 훼손되지 않았다면, 방향 바꿔서 두어번 더 넣어보세요. 계속 뱉어내면 아쉽지만 그건 그냥 버려야겠습니다. 대부분 기계 옆에 쓰레기통을 두고 있습니다.


기계에 빨간 불이 깜빡거리며 병을 먹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수거함이 꽉 차서 그렇습니다. 직원에게 이야기하면 조치해줍니다. (실용 콩글리쉬 : 댓 머신, 아웃 오브 오더, 플리즈 체키럽)


기존에는 다회용 용기(15센트 보증금)나 맥주병은 기계에서 환급이 불가능하고 일회용 용기(25센트 보증금)만 가능한 경우가 더러 있었으나 이제 그런 경우는 별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기계에 별도로 안내가 적혀있을 겁니다.


만약 기계가 없는 작은 매장에서 환급받을 경우에는 "판트, 비테"라고 하지 마시고 그냥 영어로 이야기합시다. "Please return my bottle bill" 정도가 적당하겠습니다. 또는 일회용/다회용 보증금 마크를 위에서 알려드렸죠.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밀면 굳이 말 한 마디 안 해도 알아들을 겁니다.


통계에 따르면, 독일인이 빈병보증금 환급을 요청하는 대상은 기계가 80%, 사람이 20%라고 합니다. 거의 대부분 환급 기계를 이용하는 셈입니다.

다만 제 여행패턴에서는 기계보다 사람에게 환급받을 일이 많습니다. 기차 탈 일이 많다보니 기차에서 마신 빈병을 들고 마트를 찾아다닐 시간이 없는 거죠. 기차역부터 빨리 여행을 시작해야 그 동선까지 하나하나 다 취재가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기차역의 소매점에서 환급받는 경우가 많은데, 큰 기차역에는 요르마(Yorma's) 등 체인점 슈퍼마켓이 하나씩은 존재합니다. 거의 다 받아주었습니다.


그렇다보니 "판트, 비테"라는 말을 할 일이 많았고, 뭔 말인지 못 알아들어 어버어버한 경험이 적지 않은데, 앞으로는 독일어는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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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빈병보증금 환급을 이야기하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겠어요. "다 마신 캔/병을 들고 다니라고?" 소매점은 곳곳에 있으니까 들고 다니더라도 큰 불편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야 늘 등짐을 지고 다니니 배낭 옆에 빈병을 꽂아두고 다니는데, 여건상 들고 다니기 힘든 분들이라면 아쉽지만 환급은 포기해야죠.


그런 분들이라면 처음에 음료를 구입할 때부터 맥주는 캔보다는 병으로, 물은 일회용 용기보다는 다회용 용기로 구매하시면 버리는 돈을 줄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버려진 빈병은 하루종일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숙자나 집시의 손에 발견되어 그들이 환급받게 됩니다. 전문적으로 빈병만 수거하는 사람이 많아요. 마치 한국에서는 폐지 줍는 분들이 있는 것처럼 독일에서는 빈병 줍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하루종일 수거하면 제법 쏠쏠하다고 하더라구요.


단,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마트의 환급 기계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는데, 내 앞에 그런 전문 수거꾼이 와서 수십병을 하나하나 기계에 넣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또는 알뜰한 주부님이 한 달 동안 집에 쌓아두었던 빈병을 한꺼번에 들고 나왔다고 생각해보세요. 25센트 돌려받느라 몇십분을 허비하느니 그냥 포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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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사에서 이런 내용을 보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독일은 이런 강력한 빈병 수거 정책 덕분에 빈 병의 재활용률이 95%에 달한다고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응?" 했습니다.

아침 일찍 거리에 나가보면 깨진 병이 바닥에 수두룩해요. 평일에는 컴컴한 새벽에 청소를 싹 해서 이런 걸 보기 힘든데,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어김없이 보게 됩니다.


독일의 젊은이들이 길바닥에서 맥주 마시며 늦게까지 놀다가 그냥 맥주병을 깨버리고 사라진 겁니다. 소매점은 다 문 닫은 시간이라 환급 못 받고, 술 마시며 놀고 나서 무거운 유리병을 집에 들고 갈 일도 없고, 버려봤자 8센트는 큰 돈이 아니고, 그냥 깨버리고 가요.


이런 모습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맥주병 재활용률이 95%라는 통계를 선뜻 믿지 못합니다. 이렇게 깨버린 병은 죽었다 깨어나도 재활용 못하는 거잖아요. 글의 주제에서는 벗어난 단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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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독일의 빈병보증금 환급 제도를 다시 정리한 이유가 있습니다.


독일은 기본적으로 친환경 철학이 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더욱 더 친환경을 중요시하는 추세입니다. 그렇다보니 일회용 용기보다 다회용 용기의 사용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이며, 그만큼 다회용 용기의 수거를 거부하는 경우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판트 = 25센트"라는 공식처럼 여행정보를 이야기하였으나 이제는 "일회용 보증금 = 25센트, 다회용 보증금 = 15센트"라는 구분을 알아두시면 더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잘못 공유했던 정보도 이게 벌써 7년 전 일이지만 바로잡을 겸, 서서히 바뀌어가는 새로운 추세도 알려드릴 겸, 알뜰한 여행정보로 독일의 "빈병보증금 제도"를 한 번 정리해드렸습니다.


저는 이제 "판트 제도"라는 말은 쓰지 않으렵니다. 제가 쓴 책에도 개정판부터는 모두 용어와 내용을 손질할 계획입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