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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308. 프랑스 vs 이탈리아 in 독일 포츠담 상수시 공원

독일 전체를 통틀어 "대왕"이라는 극존칭을 받은 군주가 딱 한 명입니다. 독일 역사 이전으로 보아야 할 카를 대제(카롤루스 대제)를 제외하면 말이죠.

그가 바로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2세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ße)이라 불렀습니다. 이 시기에 프로이센은 유럽 전체를 호령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하였고, 그 기반으로 독일을 통일하고 독일제국을 선포합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다방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계몽주의에 심취했습니다. 또한 강대국을 공짜로 만드는 게 아니라서 돈을 버는 족족 군대를 늘려 어마어마한 군사대국을 만들었습니다. 군대가 워낙 많아 수도 베를린에 머무를 수도 없어 베를린 근교 포츠담을 군사기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포츠담에 자신의 여름별장을 지어 오랜 시간 포츠담에 머물렀습니다. 바로 이 별장이 상수시 궁전, 그리고 상수시 궁전을 둘러싼 광활한 공원을 상수시 공원이라 합니다.

상수시(Sanssouci)는 프랑스어로 "근심이 없다(Sans, Souci)"는 뜻입니다. 연일 전쟁이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에 골치 아팠을 대왕은 이 울창한 숲 속의 궁전에서 머리를 식히며 "근심이 없기를" 염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대왕의 궁전이지만 상수시 궁전은 아담합니다. 당대 프로이센의 영향력은 프랑스에도 비견되었고 대왕은 프랑스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았을뿐 아니라 평소에도 프랑스어로 대화하는(독일어를 할 줄 몰랐다고 합니다) 사람이었기에 역사가들은 상수시 궁전을 일컬어 "베르사유궁의 대항마"라고 부릅니다. 그 압도적으로 화려한 베르사유궁과 비교하면 매우 초라하지만, 그렇게 겉으로 보여지는 호사를 버리고 최대한 실리를 추구했던 계몽군주의 모습을 상수시 궁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수시 궁전의 트레이드마크는 "포도 계단"입니다. 일부러 계단식 정원을 만들어 그 위에 궁전을 두고, 계단에는 포도나무를 심었어요. 왕의 아이디어였다고 합니다.


계몽주의의 특징이 있어요. 사색과 명상이 중요하기 때문에 계몽주의 정신을 담은 정원에는 뭔가 이국적이거나 독특한 걸 세워둡니다. 이국적인 걸 바라보거나 그 위에서 전망을 바라보며 사색에 빠지는 거죠.

왕은 중국풍의 파빌리온을 짓고 중국관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차를 마시기 위한 목적의 건물입니다. 차의 존재 자체가 오리엔탈이죠. 마찬가지로 오리엔탈에서 영향을 받았음이 명백한 드래곤하우스를 높은 언덕 위에 지어 공원의 전망을 보았습니다. 넓디넓은 공원에 아담한 궁전 하나 덩그러니 두면 썰렁했겠죠. 이렇게 상수시 공원 구석구석 건물을 하나씩 세워서 공원 전체를 격조 있게 꾸몄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70대까지 장수하였으나 후사가 없었습니다. 왕비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거든요(이와 관련된 스토리는 너무 길어 생략합니다). 그가 죽고 난 뒤 조카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고, 그의 손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위대한 선왕의 상징과도 같은 상수시 공원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프랑스 계몽주의에 심취했다고 했죠.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심취했습니다.

그는 상수시 궁전과 비슷한 사이즈로(그러나 더 높이) 오랑주리 궁전(Orangerieschloss)을 지었습니다. 물론 이탈리안 르네상스 양식이며, 내부에는 이탈리안 르네상스의 대표인 라파엘의 회화를 재현한 방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상수시 궁전처럼 계단 위에 궁전이 자리하도록 설계했어요.


단, 워낙 세상이 혼란스러운 시절인지라 공사에 집중하기 어려워 건축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고, 그 사이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숨을 거두어 막상 이 궁전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오리엔탈풍의 다관을 만들었다면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고대 로마의 느낌을 재현한 목욕탕을 만들었습니다. 진짜 목욕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고대 로마와 이탈리아적인 것에 대한 동경을 표현한 관상용 건물입니다.

오랑주리 궁전 측면의 언덕 위까지 일직선으로 정원이 있고 그 꼭대기에 벨베데레(Belvedere) 전망대가 있습니다. 벨베데레는 이탈리아어로 "좋은 전망" "아름다운 풍경"을 뜻합니다. 이탈리아 화가가 고대 로마의 팔라티노 언덕에 이런 궁전이 있었을 것이라며 그림으로 그린 것을 실제로 이렇게 지었습니다.


벨베데레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지은 건 아니지만, 이탈리아에 심취한 그는 벨베데레 아래에 이탈리안 르네상스 양식의 오랑주리 궁전을 지어 "이탈리안 패키지"를 완성할 계획이었고, 그러면서도 계단 위의 궁전 등 상수시 궁전에 노골적인 도전장을 던진 셈입니다.

상수시 공원의 이 모든 궁전 건축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난데없이 포츠담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가대항전이 펼쳐집니다. 군주의 취향에 따라 전혀 다른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 좀 더 쉬운 말로 군주가 "덕질"하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경향이 한 공간 내에서 펼쳐지는 것, 이런 걸 비교하며 여행하면 보다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그런 걸 기대하며 <베를린 홀리데이>를 만들었습니다.

가이드북이 인터넷에 있는 정보들 긁어다 대충 만든 것 아닌가 하는 편견을 거두어주시기 바랍니다. 한 장소를 다루더라도 겉으로 보이는 것을 비교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여 역사까지 공부하며 만드는 책입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