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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343. 숨겨진 궁전왕, 카를 테오도르

뮌헨의 영국 정원 이야기를 했으니 이 사람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카를 테오도르(Karl Theodor). 영국 정원을 조성한 바이에른의 선제후입니다.


혹시라도 이 이름을 어디서 들어본 곳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분명히 하이델베르크(Heidelberg)에서였을 겁니다. 하이델베르크의 유명 관광지 중 카를 테오도르 다리(Karl-Theodor-Brücke)가 있으니까요.

다리에 있는 카를 테오도르의 동상입니다. 머리에 뭘 쓴 게 아니라 새가 앉아 있습니다. 이처럼 하이델베르크 지역에서는 존경 받는 옛 권력자인데요. 하이델베르크와 멀리 떨어진 바이에른의 뮌헨에 공원을 만든 계기는 무엇일까요?


바이에른의 대공이 후사가 없이 죽자 계승 서열을 따져보니 당시 팔츠 공국의 선제후인 카를 테오도르가 가장 높은 순위에 있었습니다. 카를 테오도르는 바이에른의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입니다.


팔츠 공국의 중심지가 만하임과 하이델베르크였습니다. 카를 테오도르는 팔츠 공국의 선제후와 바이에른의 대공을 겸임하게 되고, 거처도 뮌헨으로 옮겼습니다.

권력자가 바뀌었으니 도시도 새 옷을 입기 마련이죠.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카를 광장(Karlsplatz)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뮌헨 시민은 카를 테오도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엄밀히 말하면, 외부인이 어느날 갑자기 영주랍시고 제일 꼭대기에 앉은 셈이니까요. 좀 더 복잡한 속사정도 있는데 너무 지루한 역사 이야기가 되는지라 일단 생략합니다. 시민들은 카를 광장이라는 이름도 입에 담기 싫어서 이 광장을 슈타후스(Stachus)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이 광장에 있던 술집 이름이라고 합니다.


카를 테오도르는 막 나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근거지였던 하이델베르크에서 대학교를 더욱 지원하여 학문의 발달에 힘썼고 여러 지식인을 지원하였습니다.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시민에게 마음을 얻기 위한 여러가지 프로젝트가 뮌헨에서 펼쳐지는데, 영국 정원이 그 중 하나입니다. 이 넓은 정원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주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힘으로 찍어누르지 않으면서 뮌헨에 많은 공을 들입니다. 오늘날 시민들이 파도 타며 노는 드넓은 공원이 탄생한 계기가 수백년 전 한 권력자가 백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선물한 것이었던 셈입니다.


카를 테오도르는 팔츠 공국의 선제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였습니다. 당연히 여기저기 궁전도 많이 지었는데요. 카를 테오도르의 궁전 베스트 3는 이러합니다.

본궁은 만하임 궁전(Schloss Mannheim)입니다. 오늘날 대학교로 사용되고 있어 분위기가 색다른 곳이며, 궁전 내의 일부 공간은 옛날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공개하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곳은 별장으로 지은 슈베칭엔 궁전(Schloss Schwetzingen)일 것 같습니다. 궁전 자체의 규모는 아담하지만 화려한 바로크 양식이며, 별장에 걸맞게 정원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죠.


팔츠 공국의 중심지였던 하이델베르크와 만하임, 그리고 여기서 가까운 슈베칭엔까지 이 세 개 도시가 카를 테오도르의 흔적을 가장 뚜렷하게 볼 수 있는 도시라 할 수 있겠구요.

마지막 장소는 뒤셀도르프 근교에 있는 벤라트 궁전(Schloss Benrath)입니다. 슈베칭엔 궁전과 마찬가지로 화사한 핑크빛 외관의 예쁘장한 바로크 궁전이며, 정원이 아름다운 별궁입니다.


흔히 독일에서 "궁전왕"을 이야기하면 99% "미치광이왕" 루트비히 2세를 이야기할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루트비히 2세에 필적할만한 존재감을 가진 군주는 유럽 전체를 통틀어도 찾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 다음으로는 작센의 강건왕 아우구스트를 꼽아야겠죠. 여기까지는 저도 블로그에서 따로 소개해드린 군주이구요.


그 다음으로 "숨겨진 궁전왕" 카를 테오도르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대중적으로 여행하는 곳이 아니다보니 덜 알려졌을 뿐이지 그가 남긴 흔적의 완성도와 존재감은 분명 독일 역사 전체를 통틀어 몇 손가락 안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