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두.유. Travel to Germany

#345. 베를린-함부르크-하노버의 교회

어제 "기억"이라는 화두로 이야기를 하나 풀어보았는데요. 이번에는 그 이야기의 연장입니다.


독일의 건축에 있어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교회일 겁니다. 종교국가인 신성로마제국의 본거지였으니까요. 그래서 그 도시의 교회 건축물은 중요한 의미를 갖기 마련인데요.


간혹 폐허가 된 교회도 발견됩니다. 대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것을 다시 복원하지 않은 장소죠. 복원을 하지 않았다면 이유가 있겠죠. 폐허를 그대로 놔둠으로써 후손들이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도록 하고자 함입니다.


여기 베를린, 함부르크, 하노버에서 각각 하나씩의 폐허를 소개합니다. "기억"하는 방법에 있어 세 가지 경향을 잘 나타내주는 장소라는 생각에서입니다.


먼저 하노버의 애기디엔 교회(Aegidienkirche)입니다.

폭격 때문에 천장이 날아가버렸습니다. 지금 애기디엔 교회는 그 상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마치 방치된 것처럼 아무런 복원의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내부에 약간의 기념비가 보이는 정도입니다. 아마 전쟁이 끝난 직후 대부분의 건물들이 이 모양이었을 겁니다. 후손들은 애기디엔 교회를 바라보며 당시의 참상을 기억하겠죠.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걸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함부르크의 성 니콜라이 교회(Hauptkirche St. Nikolai)입니다.

역시 폭격으로 처참히 파괴되고 첨탑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원래 교회가 있었을 자리는 마치 공원처럼 가꾸어져 있는데요. 벤치에 앉아 쉬고 떠들다가도 고개만 돌리면 폐허가 눈에 들어옵니다.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겪은 폐허가 기념물을 넘어 아예 생활공간의 일부가 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서도 지하에 내려가면 전쟁 당시의 자료를 전시하는 박물관도 있어 전쟁의 참상을 직접 이야기해주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Kaiser-Wilhelm-Gedächtnis-Kirche)입니다.

카이저 빌헬름, 즉 황제 빌헬름 1세를 기념하며 만든 매우 화려한 교회였으나 전쟁 앞에는 다 똑같죠. 완전히 파괴되고 첨탑의 일부만 남았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구멍난 이빨 같다고 하여 별명이 "충치"입니다. 이제 교회를 복원해야 하는데,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는 대신 새 교회를 옆에 지었습니다. 새 교회는 마치 달걀판을 두른 것 같은 현대건축이며, 내부로 들어가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 때문에 온통 새파랗습니다. 이런 식으로 새 것과 옛 것을 나란히 두어 전쟁의 상처는 그대로 증언하고 공간은 본래 목적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폭격으로 처참히 파괴되었고 그 폐허의 모습을 아직까지 놔두고 있는 세 가지 사례를 소개해드렸습니다.


네, 공통의 화두는 "기억"입니다. 전쟁을 잊지 말자,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하자, 나쁜 생각은 꿈도 꾸지 말자, 그렇게 독일인은 전쟁을 겪으며 얻은 깨달음을 후손에게도 대물림하고 있습니다.


비극적인 일은 없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불행한 비극이 발생했다면, 최소한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고 다시는 그러한 비극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그 깨달음을 후손에게 올바로 전해주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 노력과 의지가 느껴지기에 저는 이런 장소들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