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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349. 로텐부르크 마이스터트룽크

많은 분들이 들어보았음직한 역사 속 사건, 마이스터트룽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독일의 예쁜 소도시 로텐부르크(Rothenburg ob der Tauber)에서 전해집니다.

로텐부르크는 중세 시대에 제국자유도시로 꽤 번성했던 곳입니다. 성벽에 둘러싸인 마을의 규모는 아담하지만 굉장히 부유한 도시였었죠. 자유도시라 함은 신성로마제국의 종교권력이 개입하지 못하는 곳, 즉 개신교의 세력이 강한 도시였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30년 전쟁(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전쟁으로 시작하여 주변 국가까지 참전한 준세계대전 규모로 커진 참혹한 전쟁) 당시 가톨릭 세력의 군대가 쳐들어와 함락당하고 맙니다.


이 때 가톨릭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온 틸리(Graf Tilly) 장군은 로텐부르크의 시장과 시의원들을 모아놓고 파티를 즐깁니다. 당시 로텐부르크 시청사에 딸린 연회관(이벤트홀)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로텐부르크 마르크트 광장에 시청사(좌측 건물) 옆에 르네상스 양식의 의회연회관(Ratstrinkstube)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파티가 열렸습니다.


점령군은 기분 좋게 술을 마셨고, 틸리 장군은 로텐부르크 시장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이 도시에 사는 개신교인을 다 숙청하라는 명이었습니다. 개신교 세력이 강한 도시에서 개신교인을 숙청하라는 건 몰살하라는 말이나 다름 없습니다. 시장은 어떻게든 참사를 피해야 하기에 명을 거두어달라고 간청했고, 술에 취한 틸리 장군은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만약 이 자리에서 시장이 와인 한 통(3.25리터)을 원샷하면 봐주겠다고 했습니다. 3.25리터면 오늘날 기준으로 와인 4.5병 정도 될 겁니다. 그걸 원샷하는 건 미친 짓이죠. 하지만 숙청을 면할 수 있다는데 앞뒤 가릴 수 있나요? 시장은 한 통을 진짜로 원샷했고, 기분이 좋아진 틸리 장군은 숙청의 명을 거두었습니다.

오늘날 의회연회관에서 매시 정각마다 이런 특수장치 시계가 작동합니다. 대단한 건 아니구요. 창문 2개가 열리고 두 사람이 나오는데, 그 중 한 명(사진 우측)은 술을 마십니다. 바로 와인 원샷으로 도시를 구한 시장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시장(뷔르거마이스터; Bürgermeister)의 음주(트룽크; Trunk)라는 뜻으로 마이스터트룽크(Meistertrunk)라고 부릅니다. 로텐부르크의 입장에서는 도시의 멸망을 구해낸 아주 중요한 역사 속 사건이기에 오늘날까지도 마이스터트룽크를 각별히 챙깁니다. 사건 자체가 마치 전설에 나올 법한 재미난 동화 같아서 관광으로 유명한 로텐부르크에서 더더욱 마이스터트룽크를 하나의 관광 콘텐츠로 개발한 측면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독일 가이드북 <프렌즈 독일>에도 한 꼭지 실어서 여행의 재미를 살짝 더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동화 같이 이야기가 끝나는 게 좀 비현실적이지 않나요. 어쨌든 전쟁 중입니다. 온 나라가 전쟁터가 되어 30년이나 서로 죽이고 죽이던 참혹한 전쟁판입니다. 장군이 술 취해서 기분 좋다고 점령지를 봐주고 떠나면 그 장군은 돌아가서 무사할 수 있을까요?


마이스터트룽크에는 뒷 이야기가 있습니다.


틸리 장군은 진짜로 약속을 지켰습니다. 숙청을 면해주었고 로텐부르크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떠나는 과정에서 도시의 모든 물자를 약탈하였습니다. 로텐부르크 시민들은 숙청을 면했지만 모든 재산을 다 빼앗겼습니다.


그렇게 굶주렸을 때 전염병까지 덮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도시의 많은 시민들이 이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제국자유도시로 번성했던 로텐부르크는 이후 쇠락하고 맙니다.


동화 같은 이야기의 결말을 듣고 나니 잔혹동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뮌헨 가이드북 <뮌헨 홀리데이>에서 안내해드리고 있습니다. <뮌헨 홀리데이>는 한 도시와 지역에 집중하는만큼 이렇게 TMI 수준의 이야기까지도 수록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마이스터트룽크는 오늘날까지도 로텐부르크에서 각별히 챙기는 콘텐츠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매년 마이스터트룽크를 주제로 하는 축제가 열립니다. 올해 축제 일정은 6월 7일(금)부터 10일(월)까지입니다.

이래뵈어도 1881년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축제이구요. 길거리에는 전통적인 수공예품이나 먹거리를 파는 노점이 들어서 마켓이 열립니다. 시간에 맞춰 브라스밴드의 연주와 함께 수백명이 거리를 행진하기도 하구요. 광장에서 민속 무용을 공연하기도 합니다. 토요일 저녁에는 불꽃놀이도 열리니다.


축제의 주인공은 시청의 홀에서 열리는 마이스터트룽크 연극입니다. 독일어로 공연하므로 우리 같은 여행자들이 보편적으로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현지인에게는 인기가 높습니다.


온 시가지가 축제의 장이 되는만큼 축제 기간에는 입장료가 있습니다. 주말(토,일)과 주중(금,월)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데요.


주말은 모든 마켓과 행사장(연극 제외)에 들어가는 1일권(10유로)이 있습니다. 축제는 필요없고 관광만 하고 싶다는 분들이라면 1일권을 구입하지 말고 시내에 들어가는 성문 입장료(3유로)만 내고 들어갑니다.


주중은 1일권의 개념이 없고 시내에 들어갈 때에도 티켓이 필요 없습니다. 마켓 등 행사장에 들어갈 때에만 5유로 안팎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갑니다.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전체 축제 기간에 유효한 티켓(22유로)도 별도로 판매합니다.

로텐부르크는 마을 자체가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여기서 중세의 의복을 입고 중세의 방식으로 축제를 즐기니 상투적인 표현으로 "시간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약 이 기간 중 바이에른을 여행한다면 로텐부르크도 버킷리스트에 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아, 그래서 로텐부르크를 점령했던 틸리 장군은 잔인무도한 악인이었을까요? 로텐부르크 입장에서야 그렇겠지만 신성로마제국 중 가톨릭 세력이 강한 도시에서는 전쟁을 지휘한 장군으로 높이 평가합니다.

가톨릭 세력이 강한 대표적인 도시가 뮌헨인데요. 궁전 앞마당에 해당되는 오데온 광장에 틸리 장군의 동상이 있습니다. 어디 변두리도 아니고 시내 중심에 동상을 세워 기념할 정도로 존재감이 강한 역사 속 인물입니다. 저마다의 입장이 다를 뿐이죠.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