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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359. 자동차 133년, 벤츠의 새로운 시작

얼마 전 독일의 다임러 그룹(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20년 내에 모든 차량을 친환경차로 생산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쉽게 말해, 가솔린과 디젤 등 내연기관 차량을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는 거죠. 물론 20년이라는 긴 기간을 가진 장기 플랜이기는 합니다만 다른 회사도 아니고 다임러 그룹에서 내연기관과 결별하는 것은 굉장히 커다란 이슈가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만하임에 있는 한 기념비가 답을 줍니다. 세계 최초로 가솔린(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들어 특허까지 등록하고 상용화에 성공한 사람을 기리는 기념비가 놓여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카를 벤츠. 즉, 벤츠는 단순히 "비싼 독일차" "세계적인 유명한 자동차" 정도가 아니라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든 카를 벤츠의 회사이기 때문에 내연기관과의 결별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벤츠가 만든 1호차, 즉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파텐트 모토어바겐(Patent Motorwagen)이라고 부릅니다. 직역하면 "특허받은 자동차"라는 뜻입니다. (국내에서는 페이턴트 모터바겐이라는 표기를 많이 보셨을 겁니다. 영어와 독일어가 짬뽕된 굉장히 이상한 표기입니다.)


당시까지 내연기관은 유럽 여기저기서 고안되고 실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이걸 마차에 접목시켜 스스로 움직이는 마차를 만들어보겠다는 벤츠의 발상이 1886년 파텐트 모토어바겐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참고로, 벤츠가 자동차를 완성하고도 주변의 손가락질과 스스로의 완벽주의적 성격 때문에 공개를 망설이자 그의 아내가 남편 몰래 자동차를 끌고 160km 떨어진 친정까지 무단 주행해버리는 '사고'를 칩니다. 대담한 아내 덕분에 벤츠의 역작이 빛을 보게 된 이야기는 네이버포스트에 한 번 자세히 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벤츠보다 한 발 앞서 내연기관 엔진을 단 이동수단을 발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고틀리프 다임러. 하지만 세계 최초의 자동차 타이틀을 카를 벤츠에게 빼앗긴 이유는, 그가 발명한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오토바이였기 때문입니다.

카를 벤츠가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마차를 고안했다면, 고틀리프 다임러는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자전거를 고안했습니다.

오늘날 슈투트가르트에 남아있는 다임러 기념관입니다. 여기가 바로 다임러가 오토바이를 완성한 작업장이었는데요. 보시다시피 입구가 좁아요. 그래서 자동차를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만들어도 작업장 밖으로 나오지 못하므로). 그래서 폭이 좁은 오토바이를 먼저 만들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이 작업장이 좀 더 크고 넓었다면 자동차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죠.


이후 다임러도 곧바로 자동차 개발에 성공합니다. 벤츠의 자동차가 삼륜차였다면 다임러의 자동차는 사륜차였기에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자동차의 기원을 다임러로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튼, 어떤 관점에서 보든 자동차의 최초는 벤츠 또는 다임러이고, 지금은 벤츠의 회사와 다임러의 회사가 합병하여 다임러 그룹이 되었기 때문에 바로 메르세데스-벤츠가 그 유구한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 벤츠가 내연기관과 작별하겠다고 합니다. 전기차를 많이 만들겠다든지, 수소차나 기타 다른 친환경차를 만들겠다든지, 그런 일반적인 미래 비전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내연기관을 아예 포기하겠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더욱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다른 회사도 아니고 벤츠와 다임러의 회사니까요.


아무튼 133년 전 처음 세상의 빛을 본 파텐트 모토어바겐 이래 쭉 이어지는 벤츠의 역사는 이제 20년 뒤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올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를 쓰려 하는 그들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싶습니다. (20년 뒤면 노인이 되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