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두.유. Travel to Germany

#361. 간판천국, 잘츠부르크와 로텐부르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Salzburg)의 유명한 거리, 게트라이데 골목(Getreidegasse)은 정말 대단한 것이 없는 쇼핑스트리트인데 "간판"의 힘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맑은 날에도 늘 그림자가 진 좁은 골목, 보행자 전용 거리를 가득 메운 행인들, 그 양편에 조금의 틈도 없이 줄지어 있는 수많은 상점과 레스토랑, 카페들. 그런데 게트라이데 골목의 차별성은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모든 상점이 경쟁적으로 달아 둔 간판에 있습니다.

골목의 간판은 이런 식입니다. 그림이나 문양, 조각 등으로 이 가게가 뭘 하는 곳인지 알려줍니다. 신발이 달려 있으면 신발 파는 상점인 것과 같은 식입니다. 중세에는 문맹이 많았죠. 글자를 읽지 못하는 손님에게도 가게를 알리고자 간판을 이런 식으로 만든 것이 기원입니다.

꼭 옛날 가게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맥도날드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도 게트라이데 골목의 공식을 충실히 따릅니다. 오래 된 가게와 새로 생긴 가게가 모두 이처럼 "간판"으로 경쟁하기 때문에 게트라이데 골목은 특별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합니다.


골목은 약 300~400m 정도 됩니다. 길지 않죠. 천천히 걸으며 양편의 간판을 하나하나 살펴보세요. 그리고 맞춰보세요. 여기는 뭘 파는 곳인지. 그 재미가 쏠쏠합니다.

참고로 그 유명한 모차르트의 생가도 게트라이데 골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상점에서 쇼핑하려는 현지인부터 관광객까지, 좁은 골목에 행인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아날로그적인 매력을 보면서 한 가지 발견한 게 있습니다.

보통 이런 유명한 쇼핑스트리트라면 각 상점에서 번쩍거리는 LED 조명이라도 달기 마련입니다. 간판이야 거리의 공식을 따르더라도 쇼윈도 앞에 LED 전광판을 달아 "20% 세일" "신상품 입하" "모차르트도 다녀간 카페" 같은 홍보문구를 (물론 한국어는 아니겠지만) 정신없이 보여줄 법도 한데, 그런 게 없단 말이죠.


거리에는 가로등과 쇼윈도의 불빛 정도가 고작입니다. 원색의 번쩍거리는 네온사인이나 LED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이 풍경에서 빨갛고 파란 조명이 번쩍거렸다면 분명히 분위기를 깼을 겁니다. 어딘지 현재의 시간감각과는 다른 이런 아날로그적인 매력이 있기에 게트라이데 골목의 간판들도 빛을 발하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이와 유사한 거리가 독일에도 있습니다. 역시 관광지로 유명한 로텐부르크(Rothenburg ob der Tauber)입니다.

여기는 슈미트 골목(Schmiedgasse). 정확히는 오버 슈미트 골목(Obere-)과 운터 슈미트 골목(Untere-)으로 나뉘지만 일자로 쭉 연결된 거리이니 슈미트 골목이라 알아두어도 무방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날로그적인 간판들이 양편을 빼곡히 메웁니다. 물론 게트라이데 골목에 비하면 거리가 넓고 간판이 듬성듬성 있으며 자동차도 다니는 골목이라 느낌이 다르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네온사인이나 LED 조명 따위는 찾을 수 없는 고풍스러운 거리가 동화 같은 매력을 뽐냅니다.

그리고 슈미트 골목의 끝이 바로 그 유명한 플뢴라인입니다. 즉, 슈미트 골목은 관광 중 반드시 지나갈 수밖에 없는 장소입니다. 그렇다 보니 기념품숍이나 호텔 등 보다 관광객 친화적인 상점이 많이 보이기는 합니다.

특히 제가 생각하는 슈미트 골목의 가장 큰 장점. 바로 경사진 구불구불한 거리라는 점입니다. 거리가 일직선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마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 한 눈에 거리의 전부를 볼 수 있으며 그것도 구불구불해 오밀조밀 숨어있는 간판들이 시야에 하나씩 드러나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그렇기 때문에 플뢴라인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려면 오르막길이라는 점은 감수해야 합니다. 경사가 심하지는 않은데 무거운 짐이 있다면 고생 좀 할 수 있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소도시의 풍경을 참 좋아합니다. 단순히 전통적인 모습을 복원하거나 또는 재현하려 애쓰는 흔적이 보이는 게 아니라, 정말 그 공간 자체가 그냥 과거의 어떤 시간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분위기이기 때문입니다. 주변과의 조화를 중요시하고, 혼자 튀려고 전체의 분위기를 깨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분위기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신뢰감도 느껴집니다.


잘츠부르크와 로텐부르크가 보여주는 "간판천국"의 모범답안입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