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두.유. Travel to Germany

#375. 독일 교회로 공부하는 건축 양식의 이해

건축양식을 몰라도 여행에 지장은 없습니다. 저 역시 건축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건축양식에 대해 약간의 지식을 가질 경우 여행의 이해도가 훨씬 높아집니다. 저 역시 수천 곳의 역사적인 장소를 하나하나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건축양식에 대해 직관적인 느낌은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여, 여러분에게도 그 비전문적인 "느낌"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전문성과는 1도 관계없는, 눈으로 보고 느끼는 피상적인 수준의 건축양식 분류법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독일의 교회를 교보재로 사용합니다. 똑같은 건축양식도 국가마다 차이가 있기에 독일만 가지고 전체를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만, 어차피 비전문적으로 그 느낌만 공유하는 것이니 실마리 정도로 활용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대 로마

독일에 건축이라는 개념을 남긴 것은 고대로마제국부터입니다. 로마의 건축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건축공학의 결정체였고, 질서와 비율 및 균형미가 칼같이 맞아 떨어집니다. 현재 독일에서 로마 시대 건축의 전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교회 건축물은 트리어의 콘스탄틴 바실리카가 유일합니다.


카롤링어 건축

로 멸망 후 프랑크 왕국 시절, 특히 카를 대제(샤를마뉴)로 대표되는 카롤링어 왕조 시절에 로마의 비잔틴 양식을 계승하여 새로운 건축 경향이 나타납니다. 다음에 설명할 로마네스크 양식의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는데, 아헨 대성당이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여기까지는 1000년도 더 지난 아주 옛날이다보니 주로 유적으로 존재하는 편입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로마네스크

10세기를 전후하여 로마네스크 양식이 등장합니다.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로마시대의 정신을 계승하는 건축양식입니다. 따라서 고대로마의 특징인 대칭미, 균형미 등이 극대화되고, 화려한 장식 없이 단아하게 마무리합니다. 마치 성벽을 보는 것처럼 높고 웅장한 스케일의 건축이 많습니다. 실제 이 시기에는 영토전쟁이 빈번하다보니 일반 건축물도 성처럼 튼튼하게 지어야 했다고 합니다.

내부로 들어가도 마찬가지로 거대한 홀 안에 들어온 것 같은 모습이며, 아치형의 디자인이 눈에 띕니다. 천장의 아치형 궁륭도 로마시대의 양식을 계승하였습니다. 로마네스크가 가장 만개한 나라가 로마를 계승한다고 자처한 신성로마제국, 즉 독일이었습니다.

타국의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교해보시라고 이탈리아 피사 대성당의 사진도 가져왔습니다. 더 화려하지만 아치형의 디자인은 큰 틀에서 유사합니다.


고딕

12세기경부터 등장하는 고딕 양식은 시그니처 캐릭터가 확실합니다. 일단 높은 탑을 올리는 것, 조각 등으로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 창문이 커지는만큼 창문도 장식하기 위해 스테인드글라스가 발달하는 것 등등 '과잉'이라 할 정도의 화려함을 추구하게 됩니다.

내부 역시 로마네스크보다 더 높고 더 화려합니다. 토대는 로마네스크에요. 하지만 그걸 위로 잡아늘린 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장식을 달아 치장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고딕의 최고봉은 누가 뭐라고 해도 쾰른 대성당입니다.

타국의 고딕 양식도 비슷하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입니다. 고딕은 수직의 스케일과 화려한 장식이 핵심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건축물도 대부분 고딕양식입니다.


르네상스

고딕 다음은 16세기를 전후하여 유행한 르네상스 양식인데요. 독일에서는 주로 시청사나 궁전 등에서 르네상스 양식이 발견되고, 교회에서는 르네상스가 거의 쓰이지 않았습니다. 단, 뮌헨의 성 미하엘 교회는 예외적으로 알프스 이북에서 가장 큰 르네상스 양식의 교회로 건축사적 가치를 지닙니다.


독일에 왜 르네상스 교회가 별로 없는가 하면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지만 르네상스가 유행하던 시기 독일에서는 종교개혁과 30년 전쟁 등 끝없는 종교분쟁이 벌어지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시청이나 궁전 등 민간의 영역에서는 최신 트렌드를 받아들일 여유가 있었지만 종교세력은 새 교회를 지으며 최신 트렌드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르네상스 양식의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바티칸 대성당입니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고, 가장 유행한 곳 역시 이탈리아입니다.


바로크

로마네스크와 고딕이 직선 위주였다면 17세기 이후 유행한 바로크 양식부터는 곡선이 활용됩니다. 그만큼 기술이 발달한 덕을 보았다고 해야겠죠. 풀다 대성당처럼 높은 첨탑(고딕보다는 낮아짐)과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첫인상이 둥글둥글합니다.

내부도 매우 화려하게 치장합니다. 특히 기둥이나 천장에 프레스코화를 그려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고딕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죠. 르네상스 양식에서 더 진화하였다고 보는 편이 타당합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페터 교회입니다. 역시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바로크 양식에서는 오르간, 제단, 설교단 등 모든 요소를 화려하게 장식하다보니 섬세한 조각이 많이 사용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화려함의 극치를 달립니다.


로코코

로코코 양식은 후기 바로크 양식이라 해도 됩니다. 바로크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되 좀 더 오밀조밀 섬세하게 장식합니다. 슈타인가덴의 비스 교회가 대표적인 로코코의 걸작입니다.


그러나 바로크와 로코코는 사실상 한 세트로 봅니다. 바로크는 남성적이고 로코코는 여성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비전문가의 눈으로 구분하기도 쉽지 않고, 외관은 바로크인데 내부는 로코코인 경우도 많습니다.


신고전주의

문자 그대로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것, 즉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건축에서 모티브를 얻어 재해석한 건축 양식입니다. 바로크와 로코코를 거치면서 너무 지나치게 화려함을 추구하다보니 그 반작용으로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그러다보니 고전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마치 그리스 신전을 보는 것처럼 필로티 기둥이 나타나고, 높은 첨탑이나 화려한 장식도 찾기 어렵습니다.

내부 역시 바로크와 고딕의 화려함 대신 기본에 충실한데요. 고전에서 답을 찾은 건축양식이다보니 고전을 직접 계승한 로마네스크와의 유사점도 나타납니다.

헝가리 에스테르곰 대성당도 딱 봐도 신고전주의죠. 신전 같은 필로티와 출입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리바이벌

고전을 재해석하는 신고전주의가 전부가 아닙니다. 동시대에 온갖 재해석이 난무하게 됩니다. 르네상스를 재해석한 네오르네상스, 고딕을 재해석한 네오고딕, 비잔틴 양식을 재해석한 네오비잔틴 등 저마다 신(네오)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등장하게 됩니다. 리바이벌의 시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베를린 대성당은 네오르네상스입니다. 바티칸 대성당과 비교해보면 지붕과 파사드의 장식에서 유사점이 많이 발견되죠.

비스바덴의 시립교회는 네오고딕입니다. 고딕 양식처럼 하늘로 쭉 뻗은 첨탑으로 직선적인 수직의 스케일을 표현합니다.

네오비잔틴 양식은 주로 러시아정교회에서 발견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모스크바 등 러시아에 많이 남아있구요. 독일에서도 러시아인들이 정착한 지역에서는 이러한 네오비잔틴 양식의 러시아정교회 예배당이 있습니다. 상당히 이국적으로 느껴집니다.


그 후 일반적인 건축사조로 따지면 유겐트슈틸과 모더니즘으로 넘어가야 하는데요. 독일의 교회 건축에서는 이러한 사조를 받아들인 사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전쟁이 터지고, 쑥대밭이 되고, 전후에 다시 건축이 재개되었습니다.


현대 건축

전후에 새로 교회를 건축하였으나 독일에서는 대부분 옛날 모습대로 복원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렇다보니 현대 건축은 독일 교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옛날 모습대로 복원하는 길을 택했으니 새로 지은 교회가 별로 없죠. 그나마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정도가 현대 건축의 사례로 꼽힙니다.

현대 건축 분야의 훌륭한 예시는 단연 바르셀로나의 성 가족 성당을 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으로 주요 건축양식을 시대별로 살펴보았습니다. 로마네스크는 균형과 절제, 고딕은 수직의 스케일과 장식의 과잉, 바로크와 로코코는 화려하고 화사한 곡선미를 큰 특징으로 합니다.


신고전주의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균형과 절제를 추구하며 로마네스크(보다 이전)의 시대로 순환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러면 이걸 바탕으로 한 번 건축양식을 맞춰볼까요?

힐데스하임의 성 미하엘 교회입니다. 좌우로 균형을 맞추고 성을 보는 듯한 육중한 모습이 느껴지죠. 로마네스크입니다. 로마네스크이면 10세기 전후의 건축물인가요? 네, 11세기 초에 건축되었습니다.

드레스덴의 궁정교회입니다. 바로 답이 나오죠. 둥글둥글 곡선미에 화려한 장식, 딱 바로크입니다. 그러면 건축 시기는? 네, 18세기 초입니다.


이처럼 건축양식을 알면 대략적인 건축시기도 알 수 있고, 그러면 이 도시가 과거에 언제 번영하였는지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유추는 어디까지나 유추일 뿐입니다. 울름 대성당의 건축양식은? 하늘높이 직선으로 쫙쫙 뻗은 전형적인 고딕이죠. 그러면 고딕이 유행한 14세기경의 건축일까요? 네, 일단은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높은 첨탑을 다 완성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입니다.


물론 건축양식을 이렇게 초간단 정리하는 건 많은 오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백년에 걸쳐 공사하다보면 여러 양식이 뒤섞일 수도 있고, 한 번 지은 것을 훗날 증축하거나 보수하면서 다른 양식을 섞을 수도 있으니 모든 건축물이 하나의 양식을 정답처럼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략적인 느낌이라도 캐치한다면, 설령 여러 양식이 뒤섞여 있어도 그 각각의 시대를 유추하면서 건축물의 변화상을 이해할 수 있고, 똑같은 고딕 양식도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걸 보면서 지역색을 비교하는 등 여행의 재미를 더 확대할 수 있습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