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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423. 독일과 벨기에 사이의 이상한 국경

지리에 관심 있는 분들은 지도를 들여다보며 특이한 국경을 발견하기 좋아하는데, 이런 분들이 늘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요상한 국경이 독일과 벨기에 사이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식in에서 답변하던 시절에도 관련 질문을 몇 번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딱 봐도 국경이 이상하죠. 벨기에가 양쪽에, 독일이 가운데, 뭔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국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게 뭔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데요.


몬샤우(Monschau)가 있는 부분이 독일 땅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이 독일 땅을 관통하는 선(길)이 벨기에 영토인 겁니다. 조금 더 멀리서 지도를 볼게요.

제가 노란색으로 표시한 이 부분, 국경에 가까운 독일 영토를 관통하는 이 선(길)이 바로 벨기에의 영토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두 나라의 국경이 요상하게 나오는 것이었어요.


이 길은 프로이센에서 개설한 철도가 지나는 길이었습니다. 펜반(Vennbahn)이라는 이름의 철도가 독일 아헨(Aachen)과 룩셈부르크 북부를 연결했어요. 물론 그때만 해도 이 부근은 모두 독일 땅이었죠.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 독일이 벨기에에게 땅을 빼앗기는데요. 바로 이 부근이 해당됩니다. 오늘날 벨기에의 공용어가 북부는 네덜란드어, 남부는 프랑스어, 동쪽 끄트머리는 독일어라고 합니다. 바로 독일어를 사용하는 벨기에가 원래 독일 땅이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 빼앗긴 땅에 해당됩니다.


그러면서 펜반도 벨기에의 소유가 됩니다. 그런데 펜반은 독일 땅(빼앗기지 않은 영토)을 지나갑니다. 그래서 독일 영토 내에서 벨기에 영토가 관통하는 요상한 그림이 완성된 것입니다.


오늘날 펜반은 더 이상 운행하지 않습니다. 벨기에에서 관광 상품으로 레일바이크를 운영하는 등 몇 가지 시도를 해보다가 지금은 철로를 걷어내고 자전거 도로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이 도로를 펜반길(Vennbahnweg)이라고 부릅니다. 시골의 한적한 자전거도로 및 산책로에요. 그냥 평범해보이지만, 이 길은 벨기에 땅이고 길 양편은 독일 땅입니다. 철도가 다니던 터널과 철교도 그대로 남아 자전거도로로 사용됩니다.


그러다보니까 우스운 일도 생긴데요. 독일과 벨기에의 교통법규가 다르잖아요. 길에서 사고가 났을 때, 길 밖에서 사고가 났을 때, 각각 관할하는 경찰도 다르고 적용되는 법규도 다르다고 합니다.


그나마 지금은 유럽의 국경이 개방되어 큰 실감이 안 나지만 만약 EU가 깨지고 유럽에 국경이 생기면 펜반길 양편으로 펜스를 치고 국경을 구분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참 실감나지 않는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