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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Travel to Germany

#460. 라이프치히와 워털루

제목에 두 개의 도시를 거론했습니다. 이 도시명만 보아도 누구를 이야기하려는지 감이 잡혔겠지요. 바로 나폴레옹입니다. 이번주 네이버 여행플러스를 통해 공개한 독일 역사여행기에 나폴레옹이 등장하는데, 나폴레옹와 관련된 여행지로 라이프치히와 워털루가 떠올라서 따로 소개합니다.

사실상 유럽 대륙의 거의 전체가 나폴레옹의 수중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프랑스와 비로 이웃한 신성로마제국은 아예 쑥대밭이 되었고, 나폴레옹에 의해 제국이 찢기는 굴욕도 겪게 됩니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유럽을 싹 정복하였으나 섬나라 영국은 해군력에서 뒤져 도저히 공략할 수 없었고, 이에 경제적으로 영국을 고립시키려다가 러시아의 반발을 가져오고, 그래서 나폴레옹의 대군이 러시아를 치러 떠났다가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탈탈 털리고 치명상을 입은 것이 1812년입니다. 나폴레옹이 깨지는 걸 보자 그동안 눌려있던 유럽 각국이 들고 일어나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고, 결국 1813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벌어진 전투로 나폴레옹군을 끝장을 내버립니다. 이후에 나폴레옹은 파리를 지키는 것도 버거워하다가 1814년 쫓겨나 엘바섬으로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온 유럽이 공포에 떨다가 다시 고개를 들게 된 라이프치히 전투가 벌어진 자리에는 거대한 기념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전투 100주년을 기념하여 1913년에 완공되어 문을 열었으며, 내부는 전쟁에 희생당한 모든 병사의 넋을 기리는 추모관입니다.

엘바섬으로 유배당한 나폴레옹은 섬을 탈출해 파리로 복귀해 다시 복위합니다. 또 다시 전쟁이 벌어졌으나 이미 프랑스군은 앞선 전쟁으로 피해가 극심했고, 전력에 비해 선전하기는 했으나 오래 싸우지는 못하였습니다. 1815년 벨기에 워털루 전투에서 역국과 프로이센이 주축이 된 연합군에 패하고 완전히 끝을 보게 됩니다.

워털루에도 기념비가 있는데,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로 왕국이 되는 네덜란드의 첫 국왕 빌럼 1세가 1820년 세웠습니다. 워털루 전투에 아들이 참전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총탄이 어깨를 스쳤다고 해요. 아들이 목숨을 잃지 않은 것을 기념하고 승리를 축하하고자 원뿔형의 인공언덕을 만들고 그 위에 사자상을 세웠습니다. 이곳을 사자의 언덕이라 부릅니다. (아들은 빌럼 1세에 이어 네덜란드 국왕이 됩니다.)

여담이지만, 사실 워털루(Waterloo)라는 표기는 잘못된 것입니다. 벨기에의 지명이니 프랑스어식으로 와테를로 또는 네덜란드어식으로 바테를로 정도로 적는 게 옳습니다. 물론 워털루 전투가 아니라 와테를로 전투라고 하는 게 더 옳겠고요.


학교에서 세계사 시간에 나폴레옹 전쟁을 배울 때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이해를 포기했었는데, 지금 보니 간단한 거였어요. 프랑스 대혁명으로 왕정이 끝나고 그 연장선에서 나폴레옹이 집권합니다. 그걸 보는 주변의 왕국과 제국은 자기 나라에서도 혁명이 나서 내 목이 잘릴까 겁이 나서 프랑스를 (군사적으로 또는 외교적으로) 혼내주려고 했는데 나폴레옹군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강해 역으로 탈탈 털렸던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해군력이 약했기에 나폴레옹이 영국만큼은 어쩔 수 없었고, 결론적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세 대결이 유럽 대륙에서(영국 본토가 아닌 남의 땅에서) 펼쳐져 영국이 승리한 것이죠.


이후 유럽 여기저기서 제국과 왕국을 칭하는 나라가 난립하고, 그 힘들을 주체하지 못해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그 힘들이 충돌하여 결국 세계대전에 이르게 됩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EU)" 포스트에 함께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