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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문화유산

Rüdesheim | Tip. 기차로 라인계곡 관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중북부 라인계곡(Oberes Mittelrheintal)을 보기 위해서는 유람선을 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일정상 유람선을 타기 어려운 경우에도 아쉽게나마 라인계곡을 잠깐 둘러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차를 이용하는 것. 라인 강(Rhein River) 양편은 강둑에 철로가 놓여 하루에도 수많은 기차가 지나다니는 곳이다. 따라서 이 구간을 달리는 기차를 타면 잠깐이라도 라인계곡을 볼 수 있게 된다. 물론 기차가 빠른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여유있는 관광은 절대 불가능하지만, 철로에서 강변까지 비교적 시야가 잘 트여있어 그런대로 만족할만한 요건은 된다. 로렐라이 언덕(Loreley) 등 라인계곡의 핵심을 보려면,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2012. 12. 17. 14:48 | 더보기
Goslar | etc. 람멜스베르크 광산 고슬라르의 람멜스베르크(Rammelsberg) 광산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채굴된 광산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유서깊은 장소이다. 이 곳에서 채굴된 광석(구리와 은, 그리고 납이 특히 풍부했다고 한다)은 고슬라르의 번영을 가져왔으며, 고슬라르가 한자동맹의 주역 중 하나로서 화려하고 부유한 중세를 보내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람멜스베르크 광산은 비교적 최근인 1988년까지 가동되었다. 문헌에 기록된 첫 채굴이 968년이니 무려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다는 뜻. 심지어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최소 3~4세기, 어쩌면 3000년 전까지 역사가 거슬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할 정도이다. 광산이 폐쇄되기로 결정되었을 때 고슬라르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광산의 보호에 나선 것도 이러한 역사와 상징성 때문이었다.. 2012. 12. 17. 14:19 | 더보기
Weimar | #14. 바우하우스 박물관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바이마르에서는 또 하나의 혁명적인 변화가 움트기 시작했다. 그 이름은 바우하우스(Bauhaus).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가 바이마르에 설립한 건축 디자인 학교이다. 우리가 흔히 유럽의 옛 건축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이미지와, 지금 현대의 건축의 이미지는 완전히 극과 극이다. 동양과 서양을 무론하고, 현대의 건축이라 했을 때 우리는 굳이 외벽에 장식을 가미하지 않은 네모 반듯한 사각형 건물을 연상한다. 바로 그 디자인을 만든 것이 바우하우스라는 것. 바우하우스는 기존의 건축 디자인의 틀을 완전히 뒤엎고, 인간 중심의 실용적인 건축을 만들고자 하였다. 건물뿐 아니라 건물 안에 들어가는 것, 즉 가구와 생활용품까지도 마찬가지의 철학으로 새롭.. 2012. 12. 7. 23:13 | 더보기
Weimar | #13. (2)괴테와 쉴러 동상 국립 극장(Deutsches Nationaltheater) 앞 테어터 광장(Theaterplatz)에는 괴테와 쉴러의 동상(Goethe-Schiller-Denkmal)이 있다. 동시대에 바이마르에 거주하며 고전주의를 싹틔우는데 일조한 독일을 대표하는 두 문인의 동상은 바이마르의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나 마찬가지. 실제로 괴테와 쉴러는 서로 친밀하게 지내며 문학적으로도 교류를 나누었다고 한다. 일례로, 쉴러가 말년에 그의 대표작인 을 집필했을 때 바이마르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쉴러는 스위스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스위스의 설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쓰면서 스위스를 전혀 모른다는 것은 큰 장벽이 되었는데, 스위스에 가보았던 괴테가 스위스의 풍경과 분위기를 쉴러에게 상세히 알려주어 그것을.. 2012. 12. 7. 23:00 | 더보기
Weimar | #11. 쉴러 하우스 독일을 대표하는 극작가 쉴러(Schiller)가 바이마르에서 살았던 집은 쉴러 하우스(Schillers Wohnhaus)라는 이름의 기념관으로 일반에 공개 중이다. 바로크 양식의 3층 주택 건물로, 당시 쉴러가 살던 실내 모습과 그의 소장품 등이 전시 중이다. 쉴러는 1802년 이 건물을 매입하여 온 가족이 함께 살다가 1805년 숨을 거두었다. 이후 1847년에 바이마르 시에서 건물을 매입하여 쉴러의 기념관으로 만들어 관리 중이다. 입장료 및 개장시간 : [확인]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국립 괴테 박물관(Goethe-Nationalmuseum)에서 프라우엔플란 거리(Frauenplan) 거리를 따라 다시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 방향으로 가다가 첫번째 사.. 2012. 12. 7. 22:36 | 더보기
Weimar | #10. 국립 괴테 박물관 바이마르에서 괴테(Goethe)가 살았던 집은 오늘날 국립 괴테 박물관(Goethe-Nationalmuseum)으로 변모하였다. 괴테 하우스(Goethes Wohnhaus)라고도 불리는 이 곳은, 괴테가 1782년부터 세 들어 살기 시작했던 집. 이후 바이마르에서 결혼한 괴테는 가족이 늘어나면서 건물의 방을 추가로 세를 내었고, 바이마르의 대공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는 이 집을 통째로 괴테에게 선물로 주어 1801년부터는 건물 전체가 괴테의 소유가 되었다. 괴테는 이 곳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살았다. 지금도 박물관 내에는 괴테가 마지막 임종을 거둔 침대가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괴테 사후 그의 손자들이 이 건물에 살았으며, 손자들까지 죽고 난 뒤에는 바이마르 시에서 건물을 매입하여 기념관.. 2012. 12. 7. 22:23 | 더보기
Weimar | #09. (2)시청사 신 고딕 양식의 시청사(Rathaus)는 1841년에 지어진 건물로,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에서는 가장 젊은 건물에 속한다. 1400년경에 같은 자리에 지어진 시청사가 화재로 소실되고, 1583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새로 지은 시청사 역시 화재로 소실된 후 새로 지어진 것. 물론 지금의 시청사도 2차 세계대전 후 다시 지어진 것이다. 시청사 중앙의 시계탑 꼭대기에는 하얀 종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종은 총 35개, 모두 마이센(Meißen)의 자기로 만들어진 것으로 1987년에 설치되었다. 하루 네 차례씩 종이 울린다. 2012. 12. 7. 21:29 | 더보기
Weimar | #09. (1)마르크트 광장 원래부터 바이마르 시가지의 중심이었던 곳. 지금과 같은 광장이 형성된 것은 16세기 경으로, 광장의 사면을 시청사(Rathaus)를 포함한 아름다운 르네상스 건물들로 둘러싸고, 광장은 시장으로서 시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이라고 불리운 것도 그 당시부터. 독일에 많은 마르크트 광장이 있으나 오늘날까지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바이마르의 마르크트 광장은 여전히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마다 장이 열려 식료품 등을 사고 파는 장터가 된다. 튀링엔(Thüringen) 지방의 전통 소시지인 튀링어 부어스트(Thüringer Wurst)를 판매하는 노점도 함께 열리니 간식거리로 도전해보자.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바이마르가 나치의 중요한 거점이었기 때문에.. 2012. 12. 7. 21:21 | 더보기
Weimar | #08. 프란츠 리스츠 음대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Herzogin Anna Amalia Bibliothek)과 함께 민주주의 광장(Platz der Demokratie)에 위치한 또 하나의 궁전은 "영주의 집"을 뜻하는 퓌르스텐 하우스(Fürstenhaus)이다. 1770년부터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1774년에 시립 궁전(Stadtschloss)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크게 파손되면서, 당시 영주였던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가 공사가 덜 끝난 이 곳에 임시로 거처를 삼게 되었다. 이후 한 때는 의회 건물로, 한 때는 정부 건물로 사용되다가, 오늘날에는 음악대학이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바이마르 음대는 이 도시에서 활동한 유명 작곡가 프란츠 리스츠(Franz Liszt)의 이름을 따서 프란츠 리스츠 음대(Franz Li.. 2012. 12. 7. 12:34 | 더보기
Weimar | #07.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안나 아말리아(Anna Amalia)는 바이에른(Bayern) 대공의 부인으로, 남편이 죽자 아들을 대공 자리에 앉힌 뒤 바이마르를 섭정했던 인물이다. 바이마르에서 고전주의가 한창 꽃피울 때 통치를 했던 인물로 유명하다. 그녀의 이름을 딴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Herzogin Anna Amalia Bibliothek)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바이마르 고전주의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얼핏 도서관이라고 하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반문할 수 있겠지만, 1691년 지어진 도서관으로 수십만 권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어 중세 유럽의 문화와 문학을 연구하는데 매우 큰 가치가 있다고 한다. 도서관을 처음 만든 것은 당시 바이에른 대공이었던 빌헬름 에른스트(Wilhelm Ernst).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1.. 2012. 12. 7. 12:08 | 더보기
Weimar | #06. 시립 궁전 바이마르의 시립 궁전(Stadtschloss)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바이마르 고전주의 지역 중에서도 핵심으로 꼽힌다. 외관은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 등이 뒤섞여 다소 무질서해보이기도 하지만, 내부는 바이마르 고전주의의 전형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특히 궁전 내의 예배당이 아름다운데, 바하(J.S.Bach)가 오르간 연주자로 일했던 교회이기도 하다. 그 외 궁전의 내부는 박물관으로 잘 보존된 궁전의 방, 역대 영주들이 모아둔 소장품 등을 볼 수 있고,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의 작품을 모아둔 갤러리도 유명하다. 입장료 및 개장시간 : [확인]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마르슈탈(Marstall) 길 건너.. 2012. 12. 7. 10:55 | 더보기
Weimar | #05. 마르슈탈 마르슈탈(Marstall)은 왕실 마구간이라는 뜻. 단순히 말을 묶어두고 관리하는 곳이 아니라 승마학교의 기능을 겸하거나 훗날 현대 문물이 도입된 후에는 왕실의 마차나 자동차 등을 관리하는 기능까지 담당하던 곳이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마구간이라고 했을 때 연상하는 비주얼이 아니라, 누가 설명하지 않으면 궁전이나 별궁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일반적. 신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바이마르의 마르슈탈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립 궁전(Stadtschloss)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어떻게 보면 시립 궁전보다도 더 궁전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나치 집권 당시 약 7년 동안 게슈타포(Gestapo)의 감옥으로 사용된 역사도 가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튀링엔(Thüringen) 주의 전시장 역할을 하고.. 2012. 12. 7. 09:59 | 더보기
Weimar | #04. 헤르더 교회 원래 이름은 성 페터와 파울 교회(Stadtkirche St.Peter und Paul). 그러나 이 교회에서 교구 책임자로 역임하다가 사망한 신학자 겸 철학자 요한 고트프리드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의 이름을 따서 헤르더 교회(Herderkirche)로 부르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교회가 위치한 광장도 헤르더 광장(Herderplatz), 그리고 교회 앞에 우뚝 선 동상의 주인공도 헤르더이다. 13세기 이전부터 존재하였으나 화재 등으로 인해 수차례 파손되고 보수되고, 그 과정에서 계속 증축되어 왔다. 원래는 카톨릭 성당이었으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교회가 되었으며,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도 이 곳에서 종종 설교를 했다고 한다. 또한 바하(J.S.Bach)가 바.. 2012. 12. 6. 23:36 | 더보기
Weimar | #03. 성 야콥 교회 골목 안쪽 깊숙히 조용하게 들어서 있는 성 야콥 교회(St.Jakobskirche). 겉으로 보기에는 조그마한 평범한 교회로 보인다. 내부에 화려한 조각이나 제단도 없고, 그저 안뜰에 이끼 낀 낡은 무덤들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 조그마한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눈에 띄는 사건이 있다. 바로 대문호 괴테(Goethe)가 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 그리고 교회 오르간의 제막식에 바하(J.S.Bach)가 참석했다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 이 조그마한 교회가 왕실 지정 교회가 되기도 했다. 바이마르의 옛 성벽이 놓이면서 이 교회가 성벽 밖에 위치하게 되자 붕괴 위험 때문에 철거하였는데, 철거 다음해에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교회가 지어졌으며, 시립 궁전(Stadt.. 2012. 12. 6. 22:57 | 더보기
Eisenach | #12. 바르트 성 - 박물관과 루터의 방 가이드 투어가 끝나면 박물관(Wartburg Museum)과 루터의 방(Lutherstube)은 개별적으로 관광할 수 있다. 물론 따로 비용이 추가되지 않으며, 사진촬영권이 없어도 이 두 곳에서의 촬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박물관은, 한 때 바르트 성(Wartburg)이 황폐화되었을 때 괴테(Goethe)가 이 곳에 올라 안타까워하며 박물관 설치를 제안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성에서 수집하고 있던 보물들이 2~3개의 방에 나누어 전시되어 있다. 루터의 방은 마르틴 루터가 신약성서를 번역한 곳. 영주의 보호 아래 성에 은둔하여 작업을 했다고 하면 뭔가 으리으리한 방에서 편하게 생활했을 것처럼 느껴지는데, 루터의 방은 그냥 책상과 걸상, 작은 스토브가 전부인 매우 좁고 낡은 방이다. 루터는 이 방에 틀.. 2012. 11. 10. 17:15 | 더보기
Eisenach | #12. 바르트 성 - 내부 가이드 투어로 돌아보는 성 내부 관광은 약 30분 정도 소요되는 비교적 짧은 코스이다. 성의 내부는 금빛으로 휘황찬란하게 꾸며져 있지는 않다. 고성(古城)답게 내부도 엄숙하고 낡았지만 고급스럽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형을 볼 수 있는 몇 군데의 방과 예배당, 영주의 부인으로서 바르트 성(Wartburg)에 살다가 말년에 마르부르크(Marburg)에 병원을 짓고 가난한 이들을 도왔던 성녀 엘리자베트(St.Elisabeth)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그린 갤러리, 영주의 집무 공간 등을 구경하게 된다. 하이라이트는 가이드 투어 가장 마지막인 축제의 방(Festsaal). 바르트부르크 성은 음유시인들의 경연대회가 열렸던 곳으로 유명하다. 바로 그 공연장이 이 곳. 고급스러운 내부는 물론이거니와 음향을 고려한 설계가.. 2012. 11. 10. 17:08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