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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pzig | #05. (2)교회 앞 광장 성 토마스 교회(St.Thomaskirche) 앞에는 광장이 있어서 시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광장의 이름은 따로 없는 듯, 지도상에는 Thomaskirchhof, 즉 "토마스 교회의 뜰(Hof)" 정도로 적혀있다. 의역하면, 토마스 교회 앞 광장 정도가 적당하겠다. 이 곳에서 눈에 띄는 건물은 교회 건너편에 있는 코메르츠방크(Commerzbank) 건물이다. 마치 궁전이나 부유한 시청사를 연상시키듯 건물에 치장된 황금 장식이 인상적이다. 2013. 7. 14. 10:59 | 더보기
Leipzig | #05. (1)성 토마스 교회 성 토마스 교회(St.Thomaskirche)는 교회보다 성가대가 더 유명한 곳이다. 토마너 성가대(Thomanerchor)라고도 불리는 토마스 교회 소년합창단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그 수준을 인정받은 최고의 합창단이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Johann Sebastian Bach)가 이 교회의 지휘자로 25년 동안 활동하면서 합창단을 함께 지휘하였고, 합창단을 위한 곡도 많이 만들어 오늘날까지 불리는 명곡이 많다. 바하가 일생을 마치기까지 이 곳에 재직한 인연으로 교회 내에 바하의 무덤이 있고 교회 정문 앞에는 바하의 동상이 서 있다. 교회 중앙 제단 바로 앞에 바하의 추모석이 놓여있을 정도로 이 교회와 바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교회 내에는 작은 방에 바하와 관련된 박물관도 마련되어.. 2013. 7. 14. 10:58 | 더보기
Leipzig | #03. (2)구 시청사 르네상스 양식의 라이프치히 구 시청사(Altes Rathaus). 좁고 긴 2층짜리 건물이며, 중앙 시계탑은 다소 비대칭으로 지어졌다. 이 건물이 지어진 것은 1500년대. 당시 시장이었던 히에로니무스 로터(Hyeronimus Lotter)는 기존에 있던 시청사 건물이 파손되자 당장 새로운 시청을 지으라고 닥달을 했다. 그래서 당시 기술로는 매우 드물게 9개월만에 신축된 건물이 바로 지금의 구 시청사이다. 원래 있던 건물의 터 위에 새로운 건물을 올렸기 때문에 독특한 복층 구조의 건물이 되었다. 시청사 내부는 라이프치히의 역사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며, 유료 입장으로 둘러볼 수 있다. 입장료 : 성인 6 유로, 학생 4 유로 개장시간 : 화~일 10:00~18:00, 월 휴관 2013. 7. 14. 10:57 | 더보기
Leipzig | #03. (1)마르크트 광장 구 시청사(Altes Rathaus)와 옛 건물들에 둘러싸인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은 구 시가지의 중심이다. 마르크트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신구 조화가 매우 뛰어나 여러 시대의 여러 양식의 건물들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튀지 않은채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구 시청사 외에 유명한 건물은 구 계량소(Alte Waage). 1555년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마르크트 광장은 현재 공사로 인해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는 중. 아마도 S-bahn 전철과 관련된 공사로 보인다. * 찾아가는 법 (본 블로그의 추천일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관광 안내소(Tourist Information)에서 마르크트 광장이 바로 보인다. 크게 보기 2013. 7. 14. 10:54 | 더보기
Oranienburg | #01.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 생체실험실 다카우(Dachau)에서 본 가스실만큼이나 기분 불쾌하게 만드는 공간이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KZ Sachsenhausen)에도 있다. 건물의 이름은 Pathologie mit Leichenkeller, 직역하면 "영안실이 있는 병리학 연구소" 정도가 될텐데, 쉽게 말하면 생체 실험실이다.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의 책임자였던 나치 친위대의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는 우월한 인종을 만들기 위해 인종간 교배 실험을 주도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닌 인물이었다. 그래서일까, 수용소에서 무수히 죽어나가는 수감자들의 시체를 가지고 병리학 실험을 했던 장소가 수용소 내에 있다. 시체는 지하 영안실에 안치해놓고, 필요하면 1층으로 가져와서 실험을 했다. 1층에는 딱 사람 한 명 누울 정도의 실험대가 여.. 2013. 7. 12. 21:03 | 더보기
Oranienburg | #01.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 추모비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KZ Sachsenhausen)는 전체 구역이 삼각형꼴로 생겼다. 그 삼각형의 꼭지점에 해당되는 곳에 오늘날에 추모비가 서 있다. Mahnmal der Nationalen Mahn- und Gedenkstätte, 40 미터 높이의 추모비 꼭대기에는 18개의 붉은 삼각형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피해자들의 국가 숫자와 같다고 한다. 추모비가 세워진 정반대편이 수용소의 입구. 그러니까 입구로 들어가면 멀리 정면에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 중간에도 두 채의 막사 건물이 있는데, 각각 부엌과 세탁실로 사용된 건물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도 각각 전시장으로 사용 중인데, 비정기적으로 테마를 정해 전시회를 열고 있다. 2013. 7. 12. 21:02 | 더보기
Oranienburg | #01.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 막사와 감옥 과거 수용소에는 수감자들이 생활하는 막사가 가득했지만 지금은 단 두 개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철거했다. 철거된 자리는 따로 표시를 남겨둠으로써 당시의 참상을 잊지는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가장 구석진 곳에 남은 두 개의 막사는, 당시의 참혹한 생활상에 대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부 공간은 내부를 비워둔 뒤 시청각 자료를 볼 수 있는 설비를 설치하여 방문객들에게 방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일부 공간은 당시의 화장실이나 샤워실 또는 침실 등을 그대로 보존하여 눈살이 찌푸러지는 순간을 선사한다. 그리고 두 개의 막사 중 하나는 특별히 유태인의 고통에 대한 자료를 집중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사진으로는 담지 못했지만, 3층침대가 가득 놓인 침실의 바로 앞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공간이 있는데, .. 2013. 7. 12. 21:01 | 더보기
Oranienburg | #01.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 신 박물관 정문으로 들어가기 전 우측에 있는 건물은 신 박물관(Neues Museum)이라 부른다. 원래 1961년에 이 자리에 박물관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새로 고쳐 지으면서 신 박물관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이 곳은 1933년 오라니엔부르크의 버려진 폐양조장이 있던 곳으로, 나치가 그 자리에 강제수용소를 처음 만들기 시작한 곳이다. 물론 옛 건물은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현대식 건물로 새로 지었으며, 내부의 박물관은 크지 않지만 수용소가 건설될 당시의 자료들을 집중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단, 내부 사진 촬영 불가. 신 박물관 건물 내에는 카페도 영업 중이다. 2013. 7. 12. 21:00 | 더보기
Oranienburg | #01.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나치의 강제수용소 중 오늘날까지 독일에 남아있는 곳은 총 세 곳. 뮌헨(München) 근교의 다카우(Dachau), 바이마르(Weimar) 근교의 부켄발트(Buchenwald), 그리고 오라니엔부르크에 있는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KZ Sachsenhausen)이다.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는 1936년 나치가 만들었으며, 수도 베를린(Berlin)에서 전철 S-bahn으로 죄수들을 호송할 수 있는 오라니엔부르크에 터를 잡았다. 오라니엔부르크 외곽의 지역 이름이 작센하우젠이었기 때문에 수용소 이름도 지역명을 땄다. 나치가 패망한 1945년까지 계속 정치범 수용소로 사용되었고, 그 기간동안 20만 명 정도가 수감되었으며 그 중 절반이 병과 영양실조, 고문 등으로 사망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나치 패망 후 소련.. 2013. 7. 12. 20:59 | 더보기
Berlin | #3-03.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냉전의 상징은 어느새 예술공간이 되었다. 평화를 기원하며 총 21개국 118명의 예술가들이 전세계 어디에도 없을 예술공간을 만들어버렸다. 그 이름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것은,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벽을 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슈프레 강변에 놓은 장벽은 굳이 허물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벽을 허물고 강을 헤엄쳐 갈 것이 아니었으므로. 물론 그렇게 남은 장벽들도 차례대로 철거되었고, 철거 잔해들은 기념품이라는 명목으로 부지런히 실려 나갔다. 하지만 슈프레 강변의 약 1.3km 길이의 장벽은 그대로 남았고, 통일 직후인 1990년부터 그림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림의 종류는 다양하다. 심지어 어떤 그림들은 조악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들이 담고 .. 2013. 7. 10. 17:26 | 더보기
Berlin | #2-12. 카이저빌헬름 기념교회 - 신 교회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Kaiser-Wilhelm-Gedächtniskirche)가 무너진 교회를 복구하지 않기로 결정한 대신, 바로 그 옆에 새로운 교회를 지어 교회의 기능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 새로 만든 교회는 옛 교회와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완전히 현대식 건물로 디자인되었다. 겉에서 보기에 전혀 교회로 안 보이는, 흡사 계란판처럼 생긴 검은 외벽을 둘러서 사람들에게 구 교회만 눈에 띄게 한 것이다. 신 교회의 내부도 매우 모던하다. 육각형의 크지 않은 공간을 모두 푸른 유리로 덮어버려 교회 내부가 새파랗다. 십자가와 예수상, 그 외 교회의 모든 인테리어가 다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빼어난 음향의 오르간도 유명하다. 입장료 : 무료 개장시간 : 매일 09:00~19:00 2013. 7. 10. 17:25 | 더보기
Berlin | #2-12. 카이저빌헬름 기념교회 - 구 교회 독일 통일을 이룩한 황제 빌헬름 1세, 즉 카이저 빌헬름을 위해 지은 교회가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Kaiser-Wilhelm-Gedächtniskirche)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빌헬름 황제 교회라고 번역하는 곳도 종종 있다. 황제의 가장 강성하던 시기, 그를 기념하기 위한 교회, 당연히 당대 최고의 화려한 교회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화려했던 교회도 전쟁 앞에서는 무용지물. 전쟁 중 처참하게 파괴되어 폐허만 남게 되었다. 독일이 전후 대부분의 중요한 건물들을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을 했지만 일부러 복원하지 않고 놔둔 곳이 몇몇 있는데, 카이저 빌헬름 교회도 그 중 하나이다. 그렇게 화려했던 교회가 어떻게 폐허가 되었는지 그 상태 그대로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전쟁의 위험성에 대해 일깨워주기 위함인 것.. 2013. 7. 10. 17:25 | 더보기
Berlin | #2-11. 전승기념탑 티어 공원(Tiergarten)의 정중앙에 위치하여 한 눈에 확 들어오는 거대한 전승기념탑(Siegessäule; 발음 그대로 지게스조일레라고도 한다)은, 프로이센이 가장 강성하던 시절 프랑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과의 전쟁에서 차례로 승리한 뒤 이를 기념하여 지은 것이다. 영화 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다. 영화에서 천사가 걸터앉았던 꼭대기의 빅토리아 여신상을 포함한 총 높이는 약 67m(여신상의 높이는 8.3m). 황금과 유리 모자이크 등으로 탑 전체를 아낌없이 화려하게 치장하였다. 원래는 구 제국의회 의사당(Reighstag; 지금의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 놓여 있었던 것을 나치가 지금의 위치로 옮겨두었다. 숲 속 한가운데로 옮겨두었기 때문인지 전쟁 중에도 기적적으로 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전망대.. 2013. 7. 10. 17:25 | 더보기
Berlin | #2-10. 벨뷔 궁전 우리나라의 청와대, 미국의 백악관 같은 곳. 벨뷔 궁전(Schloss Bellevue)은 독일 대통령의 관저이다. 독일이 대통령보다 총리의 권한이 강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한 나라의 대통령이 머무는 곳이라는 점에서 벨뷔 궁전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당연히 보안이 생명이기에 관광객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낮은 철창 정도로만 가려둔채 건물의 코앞까지는 모든 사람의 접근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탈권위를 느낄 수 있다. 벨뷔(bellevue)는 프랑스어로 "전망이 좋다"는 뜻. 티어 가르텐(Tiergarten)에 둘러싸여 있을뿐 아니라 뒤편으로 슈프레 강(Spree River)이 바로 보여 궁전의 이름을 벨뷔로 짓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프로이센 왕자의 궁전이었으며, 나치 치하에서는 게스트하우스로 이용되.. 2013. 7. 10. 17:24 | 더보기
Berlin | #2-08. 눈물의 궁전 기차와 S-bahn이 정차하는 프리드리히 거리 역(Friedrichstraße Bahnhof)은 베를린이 분단되었을 당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출입 통로였다. 오늘날 동서의 관문이었던 곳으로는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이나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가 유명하지만, 이 곳은 군인이 경계하며 특별한 경우에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면, 프리드리히 거리 역은 서독 지역에서부터 베를린까지 다니는 열차가 정차했던 곳이기 때문에 동서간의 왕래가 상대적으로 더 활발했던 곳이었다. 그래서 동베를린에 사는 사람들이 여기서 기차를 타고 서독으로 여행가는 것도 가능했었다. 하지만 엄연히 분단 상황에서 제 집 드나들듯 왕래하기는 어려운 것이 당연지사. 삼엄한 검문을 위해 기차역.. 2013. 7. 10. 17:12 | 더보기
Berlin | #2-05. (6)보데 박물관 박물관 섬(Museumsinsel)의 가장 끝에 있는 보데 박물관(Bode Museum). 박물관의 이름은 초대 큐레이터의 이름에서 따 왔다고 한다. 중세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유물, 비잔틴 예술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입장료 : [확인]개장시간 : [확인] 크게 보기 2013. 7. 10. 17:11 | 더보기